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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울진군 온양리 성황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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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울진군 온양리 성황림

입력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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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은 한반도의 등뼈 중에서도 가장 높고 가파른 곳이어서 산세가 무척 험하다. 우리 선조들은 이런 곳에서도 삶의 자리를 일구어 자식들을 키우면서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내륙에서는 농업의 토대인 땅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최우선이었으나, 울진과 같은 해안에서는 배를 타고 파도치는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야 했으니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 목숨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나 옛날 경제사정으로 보아, 목숨을 부지한들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역시 또 굶어 죽을 터, 그들은 바다에 빠져죽지 않으면서도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해줄 초자연적 힘이 필요했다. 그 좋은 예를 울진 온양리의 성황당에서 볼 수 있다.

성황당의 기와에 용(龍)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용왕을 모신 것이 분명하다. 좌측에는 벚나무가 풍요로운 자태로 서서 할머니의 역할을, 우측에는 나이는 어리지만 곧바로 자라는 은행나무가 할아버지의 역할을 상징하고 있다. 그 뒤로 가파른 언덕 위에는 낙락장송이 병풍을 친 듯 둘러싸고 있어서 멀리 나랏님의 가호(加護)까지 미치는 듯하다.

바로 옆 대숲으로 난 길을 따라 여유롭게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팽나무가 용트림하면서 앞을 막아서는데, 용들이 모여서 성황당의 용왕을 호위하는 모습이다. 옛날에는 이런 거목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하는데, 성황당에 들어서면 깊고 신비한 힘이 나를 지켜줄 것은 물론이고 검은 바다 속처럼 깊은 서기가 감도는 고목의 힘이 거대한 물고기 떼를 보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온양리에서 6대에 걸쳐 살고 있는 황유문씨에 의하면 이 곳에서 일년에 제를 두 번 올리는데, 제를 올릴 때 큰 짐승(범)이 내려다보곤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성황림이 거의 팽나무여서 마을 주민들은 춘궁기가 되면 팽나무 새순을 따서 쌀겨와 섞어 먹으면서 끼니를 대신했다. 일제시대 이후 아까시나무가 많이 들어왔으나 많이 말라죽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숲 가장자리에서는 곰솔과 같은 다른 나무들도 많이 죽어서 파도 모양의 고사목 띠가 나타나는데, 주민들에 의하면 태풍이 지나가면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어 죽고 새로 잎이 난다고 한다.

이런 인문ㆍ자연적 환경 속에서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수종은 여전히 팽나무가 많은데, 향나무 아까시나무 떡갈나무 쉬나무 등도 섞여 자라면서 숲의 깊이를 더한다. 또한 검은 비늘로 덮인 곰솔과 올라갈수록 더욱 붉은 줄기를 가진 소나무가 서로 어울려 성황림의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다.

이렇듯 이 숲은 내부에 층위구조가 잘 발달해 있는 반면에 숲 가장자리에는 고사목 띠가 나타나고 있는 등 해안 식생 연구에 중요한 사례가 될 뿐 아니라 동해안 일대의 대표 해안식생으로 장차 방풍림이나 경관림 등을 조성할 때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학술가치도 높은 이 숲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언덕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생명과 풍어를 빌고자 이 숲에 의지했듯이 앞으로 우리 자손들이 미래의 깊은 세계와 자신의 꿈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검푸른 동해바다의 숨소리에 맞춰 거목들이 용트림할 수 있는 숲이 늘어나기를 기원한다.

/신준환ㆍ국립산림과학원 박사 kecolog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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