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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후보지 개발제한의 그늘/일용노동자·위탁농 "밥줄 끊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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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정수도 후보지 개발제한의 그늘/일용노동자·위탁농 "밥줄 끊길판"

입력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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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이 사라져 한달 동안 일한 날이 겨우 사흘뿐이에요.""남들은 땅투기로 떼돈을 번다는데 우리는 이미 빈털터리가 됐어요." 투기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몰려든 신행정수도 예정지 충남 연기군. 그 뒤로 그날 벌어 생계를 꾸려 온 노동자와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사는 영세농 등 지역 서민 수천명의 생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보상금 등을 노린 투기를 막기 위해 연기군 일대에 지난달 18일 건축 및 토지형질변경 등 신규 개발행위에 대한 금지조치가 내려진 후 일감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감 찾아도 연일 '허탕'

12일 오후 1시께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사무소 인근의 A인력사무실. 건설현장에 작업 인부를 대주는 이 사무실 안에는 30∼40대 남자 5명이 대낮부터 새우깡을 안주 삼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김모(34·조치원읍)씨는 "한달 전쯤부터 무슨 규제다 해서 공사판이 사라졌다"며 "어디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만 쌓여 속이 새카맣게 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연기군과 인력사무소 등에 따르면 김씨처럼 생계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최소 500여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감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면서 12만원씩 하던 기능공 일당은 절반으로 잘려 나갔다. 일부 노동자들은 견디다 못해 건설경기가 좋다는 인근 천안과 아산 쪽을 기웃거렸지만 출·퇴근과 숙식 비용 때문에 포기했다.

인력사무실을 운영하는 송모(52)씨는 "어쩌다 생기는 일터를 놓고 윤번제로 인부를 나누다 보니 새벽부터 나와 기다리다 되돌아가는 이웃이 부지기수"라며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 닥치고 보니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행정수도도 좋지만, 없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됐어요…." 이 사무실에 일감을 구하러 나왔던 임모(49)씨는 "다음달 아들 대학등록금을 장만할 길이 막막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왜 농사꾼의 꿈마저 뺏나요'

생계 불안은 건재상과 장비대여업체는 물론 위탁농민에게도 현실로 밀려들고 있다.

조치원읍내 K중기는 사무실 앞마당에 포크레인 2대를 보름째 세워 놓고 있다. 철물건재상 박모(58)씨는 " 행정수도 후보지 발표 후 공사판이 올스톱돼 하루에 못 한 상자 팔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외지인 소유 땅이 절반이 넘는 연기군 남·금남·동면 지역의 위탁농민은 줄잡아 1,000여명.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야 할 처지로 전락한 이들 영세농들은 "이제는 길거리로 나앉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어렵사리 이어 온 농사의 꿈마저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불안해 했다.

연기군 남면 진의리 장남뜰에서 30년간 남의 논 3마지기를 빌려 농사를 지어 온 박만식(75)씨는 "보상이 시작되면 빈손으로 고향을 등지게 될 것"이라며 "가진 것 없는 농민만 억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이준호기자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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