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기존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를 동북아시대위원회로 개칭하고 그 구조와 기능을 크게 확대했다. 동북아경제중심위가 금융, 물류허브의 구축과 전략적 외국인투자 유치 등 번영부분에 치중했던 반면에, 새로 출범한 동북아시대위는 평화와 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새 동북아 시대의 전개에 대비하기위한 중장기적 국가전략을 마련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이런 가운데 최근 필자가 동북아시대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 그런데 세간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 하필이면 왜 '동북아 시대'냐? 노태우 정부의 국제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김대중 정부의 동아시아 담론에 비추어 보아 동북아 시대론은 다분히 퇴행적이며 축소지향적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한중일로 제한하는 배타적 인상마저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록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 저변에는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아직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역량도 안되고 주변국이 곱게 보지 않는 중심국가론을 계속 고집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매우 설득력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몇 가지 오해의 소지는 풀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대 구상은 역사의 중심 축이 동북아로 전이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편승해야 한다는 동북아 대세론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탈냉전,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대, 그리고 문화적 동질감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긴장국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협력의 담론과 실천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국가의지의 표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현실을 보자. 북핵 문제, 중국의 부상과 미·중 간의 패권 경합,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 서서히 되살아나는 영토 분쟁 등 안보 지형이 지극히 불안한 형국이다. 경제지형 역시 낙관을 불허한다. 역내 국가들간의 중층적 경합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한편, 자유무역협정(FTA)를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의 고구려사 논쟁,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문제 등 민족주의의 충돌 가능성은 21세기 동북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기초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는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 보자는 것이 동북아시대론의 기본 구상이다. 그 과정에 있어 '국제화, 세계화, 동아시아화'라는 선원후근(先遠後近)의 우회전략보다는 동북아 문제부터 우선 풀어나가자는 선근후원(先近後遠)의 정공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시대는 폐쇄적 개념이 아니다. 지리적으로는 동북아가 남북한과 한중일, 러시아로 제한될 수 있으나, 기능적으로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다. 동북아의 안보와 경제현안을 논함에 있어 미국을 제외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북아시대론은 열린 지역주의와 다자간 안보협력을 기본축으로 한다. 때문에 동북아 역내 협력은 자연히 아세안, 아태경제협력체(APEC), 유럽연합(EU) 등과의 순기능적 협력관계를 강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심국가론'이 동북아시대론의 주요 개념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중심은 지리적, 물리적, 힘의 중심을 상정한 것이 아니다. 비록 한국이 강대국은 아니지만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포석을 통해 동북아 연계망의 중심고리, 아이디어와 인적·물적 교류의 중심거점으로 자리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협력과 화해, 그리고 상생의 중심거점으로 자리잡을 때 우리는 강대국 결정론과 변방 역사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공헌 국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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