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은 동서독 통일의 부작용이 한 세대는 지나야 웬만큼 해소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통일 후 남북한은 어떨까요? 적어도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분단 50여 년. 동서독과 달리 남북한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고, 단절의 세월이 더 길었다. 소설가 우베 욘존이 즐겨 묘사했듯 독일도 분단의 아픔은 적잖았으나 제한적으로 동과 서를 왕래할 수 있었다. 반면 최근 이산가족 상봉이 연이어 이뤄지기 전까지 남북한은 등을 돌리고 증오심만 키웠다. 통일이 어느날 갑자기 닥칠지도 모른다. 남북한 주민은 과연 큰 불편 없이 화합할 수 있을까?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는 있을까?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60) 교수는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의 정신적인 부적응 문제를 10년 전부터 연구해왔다. 탈북자 면접이나 독일 등 외국 사례를 현지 조사해 쓴 논문이 여러 편이고, 공저를 포함해 관련 단행본도 두 권 냈다.
민 교수가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총결산해 최근 연세대 출판부에서 낸 '통일이 되면 우리는 함께 어울려 잘 살 수 있을까'는 정치·경제의 측면이 아니라 남북 사람의 조화 문제, 특히 정신적인 부적응이나 스트레스에 주목한 보기 드문 책이다. 남북한 주민의 사고 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 상대 체제를 얼마나 잘 수용할 수 있을지를 평가하고, 궁극에는 통일 이후 남북 주민이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북한 주민을 연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탓에 민 교수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을 다녀온 소설가 황석영씨가 "남북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판연히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 것과 달리, 그는 "남북 사람들의 마음이 50여 년 동안 상당히 달라졌다"는 쪽이다.
"상당수 탈북자들은 자신이 남한 사회에서 무시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며, 직장을 얻기 힘든 것도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기보다 남한 사람들의 편견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자본주의 분위기에 맞닥뜨릴 때 크게 당황할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에 따라 남한 주민과 탈북자를 대상으로 각각 남북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도록 했을 때 남은 86점, 북은 75점으로 남한의 만족도가 더 높지만, 탈북자들이 적응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르다. 다수의 북한 주민은 남한 사회를 탈북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거나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회로 인식한다. 심지어 남한을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다. 통일 이후 독일에서도 동독인은 사회활동 위축, 예민, 불안, 초조, 우울증 등 스트레스에 의한 적응 장애인 '전환질병(Wenderkrankheit)'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이런 고통을 술로 해결하려는 '전환음주'도 만연하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감안해 남한 주민들이 앞서서 북한에 대한 편견을 해소해야 하며,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런 부적응 해소 방안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만 했지 지금 교과서 어디에서도 그런 통일 후의 갈등에 대비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선구적인 작업이다.
/글·사진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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