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을 마무리하며 통합·상생의 정치를 다짐했던 여권이 초심을 완전히 망각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행정수도 논란을 계기로 타협은커녕 곳곳에서 새로운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도리어 정부·여당이 의도적으로 정국을 탄핵당시의 상황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으며, 국민의 '위기의식'을 이용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 복귀 첫 일성은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 '새로운 정치와 경제발전을 위한 협약' 체결에 합의했다. 신기남 의장도 17대 국회 개원 직전 한나라당 천막당사를 찾아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권의 태도는 급변했다.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신임·퇴진운동'을 언급한 직후에는 강경 일변도로 극한적인 대결 정국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여야 간의 대화는커녕, 지역주의까지도 스스럼 없이 언급하고 있다. 반대여론을 수도권 부유층·상류층의 기득권에 빗댄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의 발언은 지역·계층간 갈등을 이용하려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부른다. 급기야 청와대 정책 책임자가 수도이전 반대를 '대선 결과 불복' 등으로 규정함으로써 여권은 이번 논란을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의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총선 직전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 이를 둘러싼 여권과 일부 언론의 갈등, 전 사회적인 친노·반노 대립 등이 중첩돼 탄핵정국이 초래됐던 때와 흡사한 상황이 된 셈이다.
여권은 또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려면 '특별법 폐지안'을 제출하라"며 국회에서 '힘의 논리'마저 앞세울 기세다. 50%를 훨씬 넘는 반대여론도 야당·언론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합의 부족을 지적하는 여론을 수용하기 보다는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수도이전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당 정장선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중대사는 어떤 경우든 차분하고 냉정하게 풀어가야 한다"며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고 판단한 듯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불신임·퇴진운동을 거론해 결과적으로 친노·반노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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