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잘 있었니? 작금의 시국은 김선일씨 피살 사건으로 한반도 전체가 분노에 젖어 있구나. 이런 때일수록 군인인 너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국방의 책무에 열과 성을 다하기 바란다.5월에 네가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를 하루 앞두었던 때가 떠오르면서 아빠는 네가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비마저 내리는 바람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아빠는 그날 너와 네 동생에게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지. 식당에 들어서니 우중인데도 손님이 많더구나. "고기 3인분요? 술은 어떡할까요?" "당연히 주셔야죠." 네 동생이 입을 샐쭉 했지. "울 아빠는 순 거짓말쟁이다. 얼마 전만 해도 술 끊는다고 약속하시더니 그 새를 못 참아 또 드시려고요?"
하지만 오랜만에 아들 딸을 데리고 나온 아빠는 들떴단다. "호랑이(네 엄마) 없는 곳에서는 토끼도 왕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라. 그래서 네 오빠랑 한 잔 하려는 것이니까 더 이상의 시비는 말도록!" 이윽고 술이 나왔고 아빠는 오랜만에 너와 제대로 한 잔 하기 시작했지.
아들아, 아빠가 술을 배운 지가 올해로 30년이다. 그동안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애면글면한 삶은 술을 끊지 못하게 하더구나. 너와 함께 술을 마신 날, 역시 부자간에 나눠 마시는 술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얼큰한 취기를 담고 귀가했는데 밤이 깊을수록 아빠는 우울해졌단다. 그날 밤만 지나면 너는 귀대하여 고된 국방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 처연한 심정에 네 엄마가 잠든 걸 확인하곤 가게로 달려가 소주를 사다가 마셨다. 하지만 혼자 먹는 술은 역시 쓰기만 할 뿐이었다.
건강히 복무하고 있는 널 보는 아빠의 마음이 이럴진대 이역만리 이라크 땅에서 싸늘한 불귀의 객이 된 김선일씨의 칠순 부모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게 되는구나! 아들아, 이제 또 네가 외박 나오는 날을 학수고대하련다. 너와 다시금 만나면 우리 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나누자꾸나. 다시 볼 날까지 늘 건강하길 바란다. 사랑한다. /hks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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