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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9>노라노(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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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19>노라노(패션디자이너)

입력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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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한국일보와의 인연을 이어 오면서, 여성에 대한 한국일보의 진보적인 시선과 대우에 늘 감동했다. 종합 일간지 최초로 여성부장을 임명했고, 나아가 여성 신문사 사장까지 탄생시켜 여성계를 비롯한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 사장으로 발탁된 분의 능력이 어느 남성 못지않게 뛰어났음을 감안하더라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한국일보의 여성인력 중용은 고(故) 장기영 회장님이 현직에 계실 때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나도 그런 한국일보 특유의 여성존중 분위기의 혜택을 누렸다.

나는 1956년 유럽을 다녀와 한국에서 최초로 패션 쇼를 여는 등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한국일보와의 인연은 58년 미스 코리아의 의상을 만들게 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스 코리아가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의뢰받았는데, 나는 옷만 만든 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의 사절을 세계인에게 제대로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 아래 걸음걸이나 영문 스피치 등까지 지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 회장님이 어느날 사람을 보내 나를 보자고 하시길래 찾아가니 당시로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방년(?) 30세의 나이를 정식 샤프론으로 임명하겠다고 하셨다. 회장님은 또 "앞으로 미스 코리아 대회를 업그레이드해 달라"며 나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기셨다.

요즘 나는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주어진 여건에서 내 일, 남의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가 구원의 손길로 한 단계를 올려주었고, 한 단계 한단계 오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58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59년 대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미스 코리아 자격으로 지성을 중시했고 한국일보의 열정이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각종 이벤트도 마련했다. 특히 수영복 차림의 미녀들이 오픈카를 타고 시내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을 기획, 당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59년 미스 코리아 오현주씨는 지성과 위트로 미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회 초부터 인기상, 포토제닉상을 휩쓸었고 15위내 입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오현주씨는 당시 할리우드의 영화사인 파라마운트로부터 윌리엄 홀덴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수지웡의 세계'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달라는 제의까지 받게됐다. 가족의 극심한 반대로 결국 오씨의 출연은 무산됐지만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떨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이 모든 사실을 한국일보에 알렸고 마지막 미국에서 대회를 끝내고 보낸 참관기가 큰 인기를 끌어 "글이 참 좋았습니다" 는 장 회장님의 칭찬까지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68년에는 당시 패션기자의 의뢰로 한국일보 문화면에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소개하는 '24시의 회색옷을 입고 낙엽지는 거리로'라는 글을 실었다. 그래서인지 그해 겨울 시장의 회색 코트감이 동이 났다고 들었다. 그만큼 한국일보의 위력이 막강했다고도 할 수 있다.

73년 한국일보는 다시 한번 나를 업그레이드 해 주었다. 문화부장 의뢰로 '패션 야화(夜話)'를 10회 연재하게 되었다. 4회가 나가자 장 회장님이 "인기가 좋다"며 연재회수를 늘려달라고 하셨고 신이 난 나는 '남성 모드의 어제와 오늘 '이라는 제목 하에 '수컷이 더 아름답다'라는 소제목까지 달아 좌충우돌하며, 남성복장까지 논했다. 90년에는 '나의 일, 나의 삶에서'이란 인터뷰 란에서 당시 장명수 생활부장은 '절제된 아름다움이 멋의 비결'이라고 나의 패션 인생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패션인생에서 한국일보는 언제나 한발 먼저 선견지명을 가지고 내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준 고마운 존재다. 50돌을 맞은 한국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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