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정기권이 갈수록 딜레마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서울교통체계 개편에 따른 혼란의 보완책으로 서울시가 내놓은 정기권 도입이 연간 3,600억원대의 재정손실을 낳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민세금으로 정책실패 돌려막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기권 손실액 무려 3,670억
12일 철도청에 따르면 서울시의 계획대로 지하철 정기권(월 3만5,200원)이 서울지하철 구간에 도입되면 서울시가 입게 될 손실은 연간 2,81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할구간 손실액 약 2,326억원과 시가 철도청에 보전해주기로 한 시내 국철 구간 손실액 약 390억원을 합한 것이다.
수도권 전역에 정기권이 도입될 경우에는 인천시 164억원, 경기도 640억원 등 총 3,67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승객은 일반권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정기권을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지하철 운영주체의 수익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실액이 예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해당 지자체와 철도청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실 보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곳은 인천시 뿐. 700억원에 달하는 재정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경기도는 정기권 도입에 강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정책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도입한 정기권에 시민세금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의 도의 입장이다.
철도청은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기권 제도의 합리적 수정·보완이 이뤄질 때까지 정기권 시행을 유보해 줄 것을 서울시 등 수도권 지자체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장담한 수도권 전역의 정기권 도입은 당분간 실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돌려막기 행정'
정기권 도입에 따른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예를 들어, 1호선 시청∼서울역 1㎞ 구간과 5호선 마천∼방화 45.2㎞ 구간을 각각 매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월 3만5,200원의 동일한 요금이 적용된다. 수도권 전 구간에 정기권이 도입돼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장거리 이용객의 경우 혜택이 크지만 단거리 승객이나 교통카드 이용객(버스 포함)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 장모(30·여)씨는 "서울시가 선심 쓰듯 전액 보전하겠다고 한 손실액도 결국은 시민세금으로 돌려막는 것 아니냐"며 "일부 지하철 정기권을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해 혈세를 쏟아붓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서울시는 '운행거리'라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고 수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년 여의 준비 끝에 도입한 교통카드 시스템을 정기권 도입으로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난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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