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돈이 풀려 이자율이 떨어졌는데도 민간 투자가 늘지 않는 상황, 즉 금융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경우 재정정책을 쓸 수 있습니다. 민간 투자 대신, 정부가 나서서 예산을 가지고 댐을 건설한다거나 도로를 닦는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이죠.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시행한 뉴딜 정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IMF 위기 때 정부가 영세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로사업이나 최근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통한 정부지출 확대 등이 바로 재정정책입니다.
뉴딜정책은 경제학자 케인즈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국부론, 자본론 다음으로 유명한 경제학의 고전인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보면 ‘불황기에 정부 지출 증대가 본래 지출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국민소득 증대를 가져온다’는 ‘승수효과 이론’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고속철을 건설한다고 합시다. 이 공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급여로 1억원이 지출되었다고 하면 이 1억원을 받은 노동자들은 그 중 일부를 저축하고 나머지는 소비할 것입니다.
소비된 돈은 또 누군가의 호주머니에 소득으로 들어갈 것이고, 또 이중 일부는 저축이 되고 나머지는 소비에 사용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연쇄적인 소비증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죠. 이렇게 창출된 소득의 총합은 원래 정부가 지출한 돈의 몇 배가 된다는 것이 승수효과입니다.
승수효과는 클수록 좋은 것이죠. 사람들이 저축을 조금만 하고 소비를 많이 할수록 승수효과는 커지기에, ‘소비는 미덕, 저축은 악덕’이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새로 늘어난 소득 중에 몇 퍼센트를 소비하는가 하는 정도를 한계소비성향( c )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1에서 한계소비성향을 뺀 수치, 즉 저축하는 정도를 표시하는 말은 한계저축성향(s = 1 - c) 입니다. 간단한 모델 경제에서 정부 지출이 몇 배의 소득 증가를 낳는가 하는 승수의 크기는 바로 한계저축성향의 역수죠(1/s). 그래서 한계저축성향이 작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재정정책은 이자율이 떨어지거나 민간 투자가 일어나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국가 예산 자금이 바로 풀린다는 측면에서 그 효과가 금융정책보다 직접적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침체기에 일본 정부는 공공투자를 늘렸지만 경기 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는 워낙 소비성향이 죽어 있는 경우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풀린 돈이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모두 저축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는 정부 지출의 민간 투자 구축효과 때문이죠. 정부 지출을 증대하기 위한 자금을 국채(정부가 일정 기간 후에 이자와 원금을 지급한다는 증서)를 발행해 조달했다면 이는 시중의 이자율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시중의 여유자금을 정부가 끌어쓰는 것(즉, 돈에 대한 수요 증가)이기 때문에 이자율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재정정책의 부수적 귀결로서 여유자금이 정부로 흡수되거나 이자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죠.
이 경우를 정부 지출 증가가 민간 투자를 갉아먹었다 해서 ‘정부지출의 민간투자 구축효과’(crowding effect, 구축은 ‘몰아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지출 증대가 재정적자로 이어져 나중에 다시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측면은 재정정책의 부정적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근/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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