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장마 때면 우리 모두 은근히 바라던 일 한가지가 있었다. 어른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든 말든 마을의 큰 다리가 떠내려가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큰물이 빠질 때까지 며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아마 이태에 한번씩은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그곳에 섭다리가 놓여 있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자잘한 나뭇가지를 깔고 흙을 덮은 다리였다. 섭다리라고 불러도 사실은 섶을 깐 다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동네 어른들이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으로 다리를 놓았다. 육이오 때 강릉 비행장에서 활주로로 쓰던 철판이라고 했다. 처음엔 발 아래로 물이 흘러가는 것까지 보여 여간 어질어질하지 않았다. 나도 내 동생도 그 구멍에 신발을 잃었다. 요즘도 자다가 그 꿈을 꿀 때가 있다. 다리 아래로 빠뜨린 고무신을 따라 울며울며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퍼런 바다가 나오는 꿈이다. 아마 그때 우리가 잃은 신발 한짝들은 아직도 그렇게 망망대해를 떠돌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떠돌다 내 신발과 동생 신발이 꿈속의 우리처럼 울며울며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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