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땅도 좁고 인구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다른 나라를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용어로는 이를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라고 합니다. 한 나라의 부를 재는 척도인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은 11.9%, 일본은 10.6%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49.0%에 달합니다.그런데 최근 들어 수출은 유례없는 호황이라는데, 국민들 먹고 살기는 왜 이렇게 힘들어진 것일까요. 물론 국민들이 빚도 많은데다 언제 일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기업들은 돈벌이가 될 지 안될 지 몰라 투자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수출이 잘되면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장을 짓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써야 하는 데 이것조차 안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출→투자→고용→소비’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죠.
우선 수출이 잘된다고는 하지만, 수출이 잘되는 것은 일부 품목에만 한정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수출 5인방으로 불리는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컴퓨터, 선박 등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 1~5월 기준으로 44.2%에 달합니다.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98년 32.4%에서 12%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종사자 수만 보아도, 특정 품목만 잘 되는 것보다는 두루두루 전 분야의 수출이 다 잘 되는 것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더 큰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두번째, 수출주력 품목인 IT(정보기술) 산업은 그 특성상 고용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휴대폰이나 반도체 등과 같은 품목은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산업이 발전할수록 일손은덜 가게 마련입니다. 공장 자동화의 영향도 큽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을 투입할 때 새로 창출될 수 있는 일자리 수를 나타내는 고용계수(2000년 기준)를 보면 섬유가 10.43명, 금속이 8.93명인데 반해 컴퓨터는 2.34명, 반도체 3.05명, 자동차는 3.52명에 불과합니다.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IT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대부분 수출 주력 품목들이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도 덩달아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는 겁니다.
수출이 늘어 국민경제가 잘 되려면 중간재나 부품을 만드는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커야 하는데, 부품과 중간재는 대부분 수입해 쓰다보니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셈이 된겁니다. 일례로 휴대폰을 보죠. 휴대폰 핵심 부품인 모뎀 칩은 거의 전량 수입합니다. 플래쉬 메모리, 배터리 등 나머지 부품도 30~40%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휴대폰 수출이 늘어도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만 잘될 뿐이라는 거죠. 우리나라의 무역흑자가 늘어날수록 일본에 대한 적자가 증가하는 것도 일제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일제 부품 경쟁력은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사실 수출이 고용창출과 거리가 있는 일부 품목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산업구조가 IT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또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는 것은 극히 바람직한 것입니다.
결국 수출과 내수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복원하려면, 한 품목이 잘나가면 관련 부품 산업도 같이 잘 될 수 있도록 부품의 기술경쟁력을 키우는게 중요합니다. 이것이 중소기업들이 사는 길이기도 하지요. 또 내수 파급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비 IT 계열의 전통산업이 수출경쟁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IT와의 접목, 즉 ‘퓨전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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