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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야채 키워먹는 아줌마' 이영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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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야채 키워먹는 아줌마' 이영숙씨

입력
2004.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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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이 최고의 미덕으로 떠오른 시대, 너도나도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느라 아우성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화학재료를 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다. 이 같은 추세와 함께 유기농 채소의 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내던 돈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을 주고 사먹는 비싼 야채가 정말 안전한 방법으로 길러졌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그래서 서울 한복판 마포구 합정동에 사는 주부 이영숙(56)씨는 마음 편하게 직접 야채를 길러 먹는다. 벌써 5년이나 됐다. 동네에서, 인터넷에서 ‘야채 아줌마’로 불리며 손수 기른 야채를 주변에 나눠주며 산다는 이씨의 풋풋한 도심 속 야채 밭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이들 자란 후 잔디밭을 야채 밭으로

“배추, 무, 열무,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 케일, 쑥갓, 치커리…”

30년 전부터 살았다는 주택의 묵직한 나무 문을 열면 네 마리의 강아지가 요란스럽게 손님을 맞는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펼쳐지는 50여평의 밭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갖가지 야채가 초록빛으로 싱그럽다. 밭에 심겨진 야채의 종류를 묻자 웬만한 야채 이름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야채를 길러 먹기 시작한 것이 5년 정도 됐어요. 남편이 원예전문가인데도 그전에는 엄두를 못내다가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고 여유가 생기면서 집 앞 잔디밭에 하나 둘 야채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손수 기른 야채를 식탁에 올리는 재미에 조금씩 밭을 늘려 나가 결국 잔디밭은 야채 밭으로 탈바꿈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필요로 하지않는 나이가 되면 많은 여자들은 우울증에 빠진다는데 이씨는 그럴 틈도 없이 야채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억지로 아침형 인간 되려고 애쓰실 필요 없어요. 식물을 기르면 자연히 아침잠이 없어지거든요. 애써 기른 야채를 야금야금 갉아 먹는 진딧물 같은 벌레들이 해가 뜰 즈음에 나타났다가 금새 숨어버려요. 그 녀석들 잡으려면 그보다 훨씬 부지런해야 한답니다.”

처음에는 벌레를 보기만 해도 기겁했던 이씨였지만 지금은 웬만한 벌레는 손으로 잡아 ‘처리’한다. 화학 살충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아침이 즐거운 또 다른 이유는 간밤에 눈에 띄게 자란 야채를 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고요한 새벽, 소리 없이 자란 초록빛 텃밭 식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조용히 마음을 적신다.

- 퇴비만 쓰는 완벽한 유기농

큰 문제가 생기면 물론 남편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밭의 모양새를 구상하고 오전 오후 각각 약 2시간씩 나가 밭을 가꾸는 것은 모두 이씨의 몫이다. 거름을 주지 않으면 야채가 비실비실하게 웃자라기 때문에 열흘에 한 번 꼴로 거름을 챙겨 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화학 비료는 전혀 쓰지 않고 천연 퇴비만 주는 완벽한 유기농을 지향한다. 서울에서 파는 퇴비는 가격이 비싸 남편이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그 마을의 농협에 들러 퇴비를 챙기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식물도 생명이기 때문에 조금만 무심하다 싶으면 시름시름 병이 들어요. 병충해가 발생했는데 도저히 치료가 안돼서 야채를 뽑아버려야 할 때는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많은 비에 야채가 녹아버릴 때도 너무 안타깝지요.”

‘녹는다’는 말은 야채가 빗물에 휩쓸려 넘어진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비가 와서 야채가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농촌에서는 검정 비닐을 이용한 ‘멀칭(mulching)’ 방법을 주로 쓴다. 그러나 이씨는 흙이 햇볕을 받게 하고 싶어 고랑에 낙엽과 마른 잔디를 꾹꾹 눌러 채워 주었다. 그랬더니 잡초도 자라지 않고 흙도 고정됐다.

- “누구나 먹고 즐기는 농장 만들고 싶어요”

이씨는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지난해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앰브로시아(ambrosia)’라는 이름의 동호회(http://cafe.daum.net/ambrosia)를 만들었다. ‘신이 먹는 음식’이라는 뜻의 이 동호회에는 약 5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야채 길러먹는 재미를 나누고 있다.

직접 밭을 가꾸며 가장 좋아진 것은 이씨의 건강이다. 일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며 천식까지 앓았던 이씨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침이 뚝 떨어진 것을 알고 놀랐다. 식탁이 싱싱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희 식탁에는 야채가 끊기지 않아요. 남들은 고기를 맛있게 먹으려고 야채를 사다 곁들인다는데 저희는 야채를 먹다가 심심해지면 고기를 사다 구어 먹지요. 저 많은 야채를 네 식구가 다 먹지 못하니 이웃과 친구들에게 나눠주는데 너무 좋아해요. 주말에는 친구들이 ‘야채만 제공하라’며 고기와 술을 사서 종종 놀러 옵니다.”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이씨는 강원도 홍천에 작은 땅을 마련했다. 집에서 야채를 길러먹으며 알게 된 노하우로 밭을 가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무료로 와서 먹고 즐길 수 있는 야채 밭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주 5일 근무 시대가 됐다고 매 주말 여행만 갈 수는 없잖아요. 마당이 있다면 그곳에, 없다면 작은 주말농장을 마련해 야채를 가꿔보세요. 아프거나 우울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을 물론 깨끗한 식탁으로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거예요.”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 실내에서 야채 길러먹는 법

"아파트에 살아보니 마당이나 텃밭이 없어 야채를 길러먹을 수가 없어요." 맞다. 하지만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스티로폼 몇 개와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배양토만 있으면 간이 텃밭을 만들 수 있다. 배양토를 20㎝ 이상 깔되 흙의 깊이는 깊을수록 좋다는 것을 명심할 것. 초보자라면 종묘상에서 야채 모종을 사서 심어 기르고 조금 자신이 붙으면 흙 위에 씨를 뿌려 처음부터 길러보자.

흙이 건조하지 않도록 매일 물을 주고 열흘에 한번 정도는 거름을 줘야 튼튼하게 자란다. 야채는 직사광선을 쬐지 않으면 잘 크지 않는다. 창문 유리에 코팅이 돼 있다면 하루에 한번씩은 창문을 열어 햇빛을 쏘여 줘야 한다.

실내에서 기르기 가장 좋은 것은 '싹 채소'다. 싹 채소란 야채가 새싹일 때 먹는 것으로 무순이나 콩나물 등이 대표적이다. 두부 통이나 과일 상자 등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용기에 배양토를 1㎝ 정도 깔고 씨를 흙이 안보일 정도로 가득 뿌린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흙을 촉촉하게 적신 다음 신문지 등으로 덮어 해가 들지 않도록 한다. 매일 스프레이로 물을 주면서 콩나물은 5~7일, 무와 배는 7~10일, 고추와 메밀은 10~15일, 들깨는 15일 정도 싹이 자란 후가 가장 맛있다. 씨앗은 종묘상에서 구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 종묘상도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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