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응하는 태도는 독특하다. 그는 격식을 안 따지고 직설적으로 상대를 비난한다. 그 점을 솔직하고 비권위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피해의식으로 비판자들을 '적'으로 삼는 태도는 대통령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대통령이란 자신에 대한 지지보다 반대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직책이다. 대통령은 비판자들의 지적을 통해 자신의 정책을 튼튼하게 보완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정책을 미루거나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통령과 그의 팀이 아무리 유능해도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또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역할을 그들이 독점할 수는 더욱 없다.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정치적인 것이므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16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특별법까지 제정했는데, 이제 와서 야당과 일부 언론이 반대하면 어떻게 국정을 수행해 나가겠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원론만을 계속 주장하기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야당은 특별법 제정이 총선을 의식해 졸속 처리되었다면서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무책임한 야당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50% 이상이 반대하는 수도 이전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대가 늘어날수록 속도를 내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태도는 반발을 불러 반대여론을 더욱 높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노 대통령은 특유의 화법으로 반대 여론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지난 8일 "나는 수도 이전 반대론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내지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 하나가 무너지면 정부의 정책추진력이 통째로 무너진다"고 말했다.
다음 말은 더 어이가 없다. "지금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앞장서는 기관은 서울 한복판 종합청사 딱 앞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 아니냐. 수도권의 집중된 힘이라는 것은 막강한 기득권과 결합돼 있다"고 그는 말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한두 번 놀란 것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그 놀라움이 오래 가시지 않는다.
대통령이 시중의 여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자주 택시를 타면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격렬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수도 이전이냐. 그런 논쟁은 경기나 회복시켜 놓고 배 부를 때 하라"는 것이다. 서울에 빌딩을 가진 기득권자들이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인식은 안이한 것이다.
한심하기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을 바라보면 과반수 의석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반 공개 논란, 이라크 파병 논란,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 논란 등은 과연 집권당으로서 의식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개혁을 외치는 여당에서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나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국민 앞에 그 일을 사과했으니 재발방지책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이제 와서 누가 반대했는지 자수하라는 것은 실현가능성도 없는 유치한 짓이다. 반대자를 색출하여 또 다시 분당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하면 열린우리당의 피가 '순혈'이 될까.
참으로 국민 노릇하기 힘든 세상이다. 대통령의 화법을 빌리면 "국민 못해 먹겠다"고 말해야겠지만 그렇게 국민의 격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대통령도 여당도 무엇이 시급한 국정과제인지 완급을 정리해야 한다.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을 위해 밤낮 없이 뛰어야 할 판에 무슨 한가한 싸움인가.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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