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고용불안이 맞물려 저(低)소비 구조가 고착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신용불량자와 가계부채 문제가 해소되면 얼었던 소비가 풀려 경기도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평균수명은 길어지는 반면 정년은 짧아지는 데 따른 '노후 생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선호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불자와 가계 빚이 줄고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경기회복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저소비로 인한 경기침체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일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소비자 체감경기온도가 가장 낮은 연령층은 40∼50대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의 6월 소비자기대지수(경기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심리)는 20대(98.5)∼30대(95.8)에 비해 40대(89.8)∼50대(90.1)에서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2·4분기 고용전망 체감지수 역시 40대 67, 50대 64로 20∼30대에 비해 낮은 상태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중장년 '가장(家長)층'의 체감경기와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것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40대 초반의 직장인 K씨는 "사오정(45세 정년)이 보편화하는 상황에선 소득이 좀 늘어난다 해도 도저히 씀씀이를 늘릴 수 없다"며 "우선은 은행대출금을 갚고 그 다음엔 저축을 하고 소비는 가장 나중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현재 70대 중반. 80대 진입도 그다지 멀지는 않다. '운좋게' 50대 중반에 정년을 맞는다 해도 25년 이상 먹고 살아갈 문제가 남는 것이다. 더구나 국민연금 등 불충분한 공적 노후대비장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길고 막막해진 노후'를 위한 선택은 결국 '소비는 줄이고 저축은 늘리는' 것 외엔 없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해 노령화에 대비한 개인저축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년단축에 따른 고용불안 급속한 노령화 국민연금 불신 등이 겹쳐 소비개선을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가계부채와 신불자 문제가 큰 고비를 넘겨 해결가닥을 잡은 만큼 하반기부터는 소비가 살아나 전체 경기도 완만하게 개선추세로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신불자나 가계부채는 현 소비부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청년실업 물가상승 부동산주식침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소비심리회복 시기는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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