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잘 만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시 그 나라의 국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회에서 기욤 드릴과 허만 몰을 예로 든 이유도 그들이 당시 세계지도 제작으로 명성 높던 프랑스와 영국의 대표적인 지도 제작자이기 때문이다.18세기 초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지도에서 '한국해(Sea of Korea)'라는 명칭이 거의 정착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명성이 부족했던 독일에서는 18세기 후반까지 일부 지도에서 '동해'가 사용되었다. 당시 제작된 독일 지도는 '동해' 앞에 작다는 형용사인 'minus, kleine'를 붙인 것이 특징이다.
1739년 발간된 요한 마티아스 하스(Johann Matthias Hass·1684∼1742)의 아시아지도에는 작다는 의미의 단어를 붙여 동해를 소동해(MARE ORIENTALE MINUS)로 표기하고 지금의 동중국해를 동해(TONGHAI MERE)로 표기했다. 또 1786년 프란츠 루드비히 귀세펠트(Franz Ludwig Gussefeld·1744∼1807)의 아시아지도에는 한국해를 작은 동해(KLEINE ORIENTALISCHE MEER)로, 지금의 동중국해와 일본 동쪽 바다까지를 큰 동해(GROSSE ORIENTALISCHE MEER)로 표기했다.
당시 독일 지도제작자들은 한국해 표기에 대한 인식에 다소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소동해'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은 동해가 있다면 어딘가 큰 동해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이 큰 동해를 지금의 동중국해, 나아가 일본 동쪽 앞바다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중국식 발음 'TONGHAI'를 채택함으로써 '동해(East Sea)'라는 명칭이 중국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주장대로 '동해'를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다 하더라도, 중국과 분쟁이 생길 수 있다. 'East Sea'는 지금의 동중국해를 나타내는 'East China Sea'보다 더 광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주장하는 'East Sea'는 서양고지도에서는 한번도 쓴 적이 없는 듯 하다. 따라서 서양 고지도사의 관점에서 '동해(East Sea)' 표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바다 이름을 역사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명칭이 국제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방향 개념보다는 귀속 여부를 알 수 있는 고유 명칭, 세계에 내 놓아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름, 향후 분쟁의 소지까지 감안한 이름이 우리 바다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이돈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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