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7월12일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칠레 남부 파랄에서 태어났다. 1973년 산티아고에서 졸(卒). 영화 팬들에게 네루다는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1994년 영화 '일포스티노'를 통해 뚜렷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 영화에서 필리프 누아레가 역을 맡은 네루다는 조국 칠레에서 쫓겨나 이탈리아의 한 섬에 머무르며 순박한 집배원과 교유한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네루다가 실제의 네루다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루다가 1940년대 말부터 망명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다.네루다에게 외국 생활은 낯선 경험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버마·스리랑카·싱가포르·스페인 등지를 떠돌며 외교관 생활을 했고, 늘그막에 자신이 지지하던 아옌데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주(駐)프랑스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가 노벨문학상(1971)을 받은 것도 프랑스 대사로 있을 때였다. 그러나 외교관으로서 외국에 사는 것과 망명자로서 외국에 사는 것이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루다의 망명을 초래한 것은 그의 공산당 활동이었다. 그는 1943년 공산당에 가입하기 전에도 스페인 내전이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소재로 좌파 입장에서 정치시를 쓴 바 있다.
그러나 네루다는 무엇보다도 서정시인이었고, 그의 문학세계를 빚어낸 근원적 질료는 대지와 사랑이었다. 스무 살 때 출간해 그의 명성을 확립한 '사랑의 시 스무 편과 절망의 노래 하나'의 강렬한 서정성은 그 뒤 이어진 기나긴 문학적 여정의 길잡이라 할 만했다. 그 가운데 '스무 번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예컨대 '밤은 별들로 수 놓여 있고/ 그 별들은, 멀리서, 푸르게, 떨고 있네'라고// 밤바람은 하늘을 돌며 노래하네//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네// 나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이따금 날 사랑했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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