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라크 대사관이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으로부터 1만5,000달러를 빌렸다가 고(故) 김선일씨가 살해된 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장은 김씨가 무장단체에 납치됐음을 알았던 지난달 10일 대사관을 찾아 돈을 건넸다.대사관이 돈을 빌린 이유가 석연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돈의 용도를 두고 감사원은 컨테이너 가건물 신축비용, 외교통상부는 현지 직원 퇴직금 부족분 충당 등으로 엇갈리게 밝혔다. 어느쪽이나 요령부득이다. 가나무역이 맡은 가건물 공사 대금을 가나무역에서 빌려서 준다는 건 이상하다. 바로 전날 임홍재 대사가 요르단 암만으로 출장을 가서 현금 조달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서둘러 민간업자의 돈을 빌려 퇴직금을 채워줬다는 얘기도 어색하다. 외교부 관계자도 인정하듯 현지 한국계 기업이나 교민단체가 대사관에 자금 융통 등의 편의를 제공해 온 것은 오랜 관행이다. 따라서 외교부는 이를 감추려고 군색한 변명을 하기보다 이번 일을 해묵은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적절한 관행의 존재 여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이번 일로 그 동안 알려졌던 것 이상으로 가나무역과 주 이라크 대사관이 밀접한 관계였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김 사장이 돈만 전하려고 대사관을 찾았다는 얘기는 더욱 믿기 어렵게 됐다. 김 사장이 김씨 피랍 사실을 끝내 알리지 않고 대사관을 나섰다면 왜 그랬는지가 궁금하다. 또 만에 하나 대사관측이 김 사장으로부터 김씨 피랍 사실을 전해 듣고도 김 사장과 함께 '조용한 물밑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택했다면 그 배경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리가 여러 번 지적했듯 가나무역이 미 군수지원업체 KBR과 어떤 업무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그 때문에 미국측이 정보 통제에 관여한 것은 아닌지 밝혀져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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