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영문학자이지만, 통념의 영문학과는 다른 영역에서 매우 뚜렷한 업적을 내놓은 학자가 두 사람 있다. 백낙청(서울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다. 백 교수가 66세, 김 교수가 그보다 한 살 많으니 연배도 비슷하다.백 교수는 '민족' 또는 '민족문학'을 화두로 삼아 실천문학과 문학운동에 크게 공헌했다.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의 비평활동은 196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진보문학 운동의 중요한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했다. 올해 초 작고한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가 "영문학자가 어찌 그리 사회학에 밝느냐"며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로 사회과학에 해박했다.
김우창 교수의 '스타일'은 그와 달랐다. "영문학보다는 영문학이 아닌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 왔다"는 점에서 같을지 모르지만, 정치와 사상을 사유하고 비평할 때 그는 주의·주장을 앞세우기보다 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에 기대려 했다. 때로 "실천에 둔감하다"는 혹평도 감수해야 했지만 언제나 이론의 힘을 믿었고, 거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그 탓인지 몰라도 지식인 사회에 끼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에는 '그룹'이 없다.
2년 전 김 교수의 정년퇴임에 맞춰 그의 연구활동과 사상의 전모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두 권의 책이 생각의나무에서 출간됐다. '행동과 사유―김우창과의 대화'는 김 교수와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권혁범(대전대) 여건종(숙명여대) 윤평중(한신대) 교수의 좌담 내용을 담은 책이다. '사유의 공간―김우창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은 최장집(고려대)교수 등 학자 9명이 그의 문학비평작업과 사유의 세계를 분석했다.
좌담록 '행동과 사유'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이 땅의 거의 유일한 자원"(도정일 경희대 교수)이라는 김 교수의 사상세계를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힌 내용들이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나는 이론과 실천을 지나치게 함께 돌아가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기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세계는 행동의 세계보다 훨씬 넓은 세계입니다.' '대중의 이름으로 인간 이해를 위한 엄정한 작업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심히 걱정스럽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사회적 삶에서 비극적 모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면서도, 그 모순은 사회 속에 작용하는 이성적 과정의 존재로 하여 조금은 완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심미적 이성' '겹눈의 사유' '구체적 보편' 등으로 압축해 표현되는 김우창 사상의 요체는 역시 이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10일 오후 2시 고려대 한국학관에서는 이번 책 출간을 기념해 '김우창과 한국 인문학'이란 학술발표회도 열린다. '사유의 공간'에 실린 김우창론 집필자인 황종연(동국대) 문광훈(고려대) 권혁범(대전대) 교수가 발표하고 토론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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