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명을 바꾸겠다고 법석을 떨다가 최근 그만뒀다. '수구꼴통'으로 빛 바래고 '차떼기'로 멍든 이름을 갈겠다며 여론조사도 하고 국민공모까지 했다가 '도로한나라당'을 택한 것이다.당명 교체 여부야 한나라당의 맘대로 겠지만 개명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뭔가 께름칙한 흐름이 엿보인다.
교체하겠다고 했을 때나 포기했을 때나 모두 여론조사를 내세웠다. 처음에는 "국민 70% 찬성"이 개명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지지층의 70% 반대"를 이유로 없던 일로 해버렸다. 조삼모사(朝三暮四) 냄새가 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수도권, 2030세대에선 여전히 교체쪽이 높다. 반면 영남, 노년층은 반대가 우세다. 후자는 한나라당의 든든한 밑천이고, 전자는 비지지층, 다시 말해 당이 흡인해야 할 공략 대상이다. 개명하자고 할 때는 전자를, 번복할 때는 후자쪽 여론을 인용한 것이다.
애초부터 당명 교체는 여론문제가 아니라 지도부의 결단과 선택의 문제였던 셈이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지도부의 선택이 바뀐 것뿐이다.
결단 날 것 같던 지난 총선에서 선방했고 재보선에선 완승했다. 지지율 1위도 탈환했다. 십 수년간 계승해온 든든한 자산인 보수지지층 30%의 위력을 실감한 것이다. 그래서 당명도 그들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영남 의원들이 앞장서 개명 반대를 외쳤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한나라당 개명 무산 소동은 고정지지층을 지키며 안주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2007년에 51% 득표로 집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한 후 뼈를 깍는 자세로 환골탈태하겠다던 비장한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이동훈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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