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 친척방문 계획을 세웠던 대학생 이재용(22)씨는 비자 발급을 위한 인터뷰 예약을 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지난달 21일 인터뷰 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대학추천프로그램(URP)을 학교에 신청하려 했지만 18일 갑자기 URP가 폐지됐다"며 "7월부터는 미 대사관에서 인터뷰 예약도 받지 않는다"고 난감해 했다. 여름 휴가철과 방학을 맞아 미국을 방문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미국 비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9·11테러 이후 인터뷰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등 비자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진 데다 미 대사관이 전화 예약제를 다음 달부터 인터넷 예약제로 바꾸기 위해 이달 초 전화예약을 중단했기 때문. 대사관측은 이미 전화예약이 들어와 있는 인터뷰만 다음달 20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여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상담약속이 잡혀 있는 무역업체 직원이나 어학연수 일정을 확정해 놓은 대학생들은 출국을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H여행사 미국비자 담당자는 "어떻게 하면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 씩 걸려온다"며 "그동안 '인내력 테스트'였던 미국 비자 발급이 올 여름 진짜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리 인터뷰 예약을 한 사람들도 비자 발급에 시간이 걸려 출국에 차질을 빚고 있다.
8일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 옆 긴 행렬에 서서 2시간을 기다린 식품업체 직원 황모씨는 "6월 초 신청해 오늘에야 인터뷰를 했는데 통과돼도 다시 열흘은 지나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며 "예전엔 모두 2주일이면 됐는데 너무 길어져 미국 상담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한국암웨이의 경우 올 여름 국내 회원들을 초청해 미국에서 가지려던 총회가 비자 발급 문제로 어려워지자 일본 미야자키(宮崎)로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이런 급한 사정을 악용해 "인터뷰를 가능하게 하거나 당겨주겠다"며 '급행비자 신청'을 받는 비자대행업체와 브로커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대사관에 내는 100달러의 수수료와 18만원 정도의 비자업무대행료 외에 40만∼50만원의 웃돈을 받고 있다.
F유학원의 한 상담원은 "이미 잡혀있는 인터뷰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들을 찾아 급한 사람과 연결해주거나 수십만원을 주고 예약자의 차례를 사는 경우도 있다"며 "사정이 급박한 일부 회사는 미대사관과 통하는 정·관계에 줄을 대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다국적 제약회사 행사에 참석한 뒤 5일 귀국한 회사원 김정민(32)씨는 "하마터면 비자를 제때 받지 못해 회사 업무에 차질을 빚을 뻔했다"며 "비자발급 대행사에 웃돈을 주고 겨우 날짜를 맞췄지만 평소에 그렇게 '우방'임을 강조하는 미국에 가기 위해 급행료까지 내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편치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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