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신화, 그 위험한 유산 外패트릭 J 기어리 지음ㆍ이종경 옮김
지식의풍경 발행ㆍ1만3,000원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등 지음ㆍ박지향 장문석 옮김
휴머니스트 발행ㆍ2만5,000원
냉전은 끝났지만 평화로운 세계는 아직 멀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중동에 그림자를 드리운 한편으로 민족주의 열기가 지구 곳곳에서 분쟁의 불씨로 자라고 있다.
한국 민족주의도 뜨겁다. 민족통일은 지상의 과제로 설정됐고,‘민족 자주’를 위해서는 동맹해체도 불사한다는 의식이 자라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 담론도 날이 갈수록 무성해지고 있다.
국내외의 민족주의 정서는 저마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민족과 그 역사ㆍ전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깔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학계 일각에서 민족의 실체성에 의문을 표하고 민족주의의 도구적 기능을 지적하면서, 회의적 성찰을 촉구하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민족의 신화, 그 위험한 유산’(원제 The Myth of Nations_Medieval Origins of Europeㆍ민족이라는 신화, 유럽의 중세적 기원)은 유럽 각국이 으레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상정한 대이동 시기, 즉 로마제국이 해체되고 이른바‘바바리안’의 이동으로 새로운 유럽이 형성되던 시기의 역사를 파헤쳤다.
유럽 민족주의가 민족의 실체를 담보하는 유력한 장치로 활용한 이 시기의 역사적 실상은 현재의 민족을 가르는 영토나 역사, 언어, 문화 등 어느 잣대도 적용하기 어렵다. 대신 개인과 소규모 집단의 이해에 따라 형성ㆍ재형성을 반복하는 인간집단, 끊임없이 지배집단이 바뀌는 영토, 언어와 혈통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특정집단에 참여하는 역동적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유럽의 민족국가는 19세기 정치가와 지식인들이 창조한‘상상의 공동체’일 뿐이라고 설파한다. 특히 민족주의적 열정에 불을 붙이는 영토의식의 근거로 내세워진‘최초 획득의 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 이후의 1,500년의 역사를 지우는 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종족적 민족주의의 독으로 가득 찬 유독성 쓰레기더미가 됐고, 그 독은 대중의 의식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이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이 역사가의 당면과제라고 제시한다.
영국의 세계적 석학 에릭 홉스봄이 서장을 쓴 ‘만들어진 전통’(원제 The Invention of Traditionㆍ전통 발명)은 흔히 민족의 일체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여겨지는 전통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책이다. 유럽에서‘전통 창조’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19세기말~20세기 초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유구한 전통’이 실은 극히 최근에 형성된 것이며, 더러‘발명된’ 것임을 밝힌다.
씨족별로 색깔과 무늬가 다른 스코틀랜드인들의 체크무늬 킬트(남성용 치마)가 사실은 잉글랜드와의 통합 이후에 등장했고, 고색창연한 영국 왕실의 의례도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런‘발명된’ 전통이 역사와 동떨어져 있고, 정치적 의도에 따라 조작되고 통제된다는 점이다.‘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례를 들어‘만들어진 전통’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로 자리잡고, 어떻게 정치인들에 의해 민족국가의 권위와 특권을 부추기는데 쓰였는지를 살핀다.
인도와 아프리카에 대한 일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유럽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두 책이 우리 현실에 그대로 원용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만들어진 전통’ 2장에서 웨일즈의 과거를 추적한 프리스 모건이 전통 창조자와 신화 제작자들의 변화에도 불구하고‘발명’의 지향점과 결과적 영향은 같다고 지적하며 밝힌“사냥꾼은 바뀌었지만, 사냥은 계속됐다”는 말의 울림이 적지않다. 지금 이 땅의 민족주의를 창조하고 있는 사냥꾼은 누구이며, 사냥감은 무엇일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