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나무 / 숀 탠 글ㆍ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창 너머 / 찰스 키핑 글ㆍ그림. 박정선 옮김. 시공주니어.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읽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동참하여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하는 책이 있다. 처음에는 보기 드물게 아이들의 어두운 감정을 그리는 두 책을 우울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반복해 읽을수록 두 책은 달랐다. ‘빨간 나무’는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읽은 반면, ‘창 너머’는 볼 때마다 주인공 제이콥의 내면이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희망의 반대말이라면 절망이나 실망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빨간 나무’의 작가 숀 탠은 우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고, 세상은 마음도 머리도 없는 귀머거리 기계처럼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나는 말을 하지만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소리에 지나지 않는 느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뭔가 할 일이 있고 관객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멍하니 길을 잃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날, 그런 날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지친 마음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 때 홀연히 나타나 자라는 빨간 나무를 발견한다. 그 나무가 너무 갑작스럽다고 느낀다면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작가는 희망의 단서를 매 페이지마다 숨겨두고 있으니. 희망의 불씨는 항상 마음속에 있지만 우울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가끔씩 못 볼 뿐이다. ‘창 너머’ 에서는 우울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의 색깔과 분위기는 무겁다. 제이콥은 늘 자기 집 이층에서 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본다. 살짝 들춘 커튼 사이의 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는 우중충하고 단조롭다. 교회와 과자가게와 양조장이 있고, 청소부와 말라빠진 개를 키우는 노파와 사람들에게 침을 뱉는 조지가 있다. 그런데 갑자가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말이 질주해온다. 양조장의 짐마차를 끄는 말이다. 마부가 말을 끌어간 후에 노파가 죽어서 축 늘어진 개를 안고 간다.
제이콥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걸까? 그 애는 왜 창문에 활짝 웃는 노파와 살아있는 개를 그린 걸까? 제이콥은 왜 밖에 나가서 보지 않으며 말이 날뛰는 동안에도 자기 방은 이층이라 안전하다고 생각만 하는가? 작가의 글은 너무나 간단해 많은 것을 생략한다.
독자의 생각과 읽을 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것이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결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각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데서 찾으라고 권해야 할 것 같다.
강은슬/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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