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그만해라히사츠네 게이치 지음/ 김지효 옮김
명진출판 발행/9,500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진입이 가져온 큰 변화 중의 하나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회사를 떠나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대신 평생직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들은 ‘자기개발’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어 영어, 경영학 석사(MBA), 공인회계사(CPA) 등의 공부에 몰두하게 됐다. 이와 관련된 학원은 직장인들로 만원을 이루고, 서점은 특별코너까지 설치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0년 이상 장기불황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특히 사무직이 그렇다. ‘지적 생산의 기술’을 저술한 우메사오 다다오 교수는 그가 쓴 책에 인용문이 거의 없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지만, 그것은 인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미 누군가 했던 말을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이론을 펼치려면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을 펼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거품경제 붕괴 후 일본이 오랫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지나치게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경제가 다시 살아날 길은 서구이론이나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해 서구사례를 연구하고 선진이론을 열심히 받아 들였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공부형 비즈니스맨’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부형 비즈니스맨은 지식을 저장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늘 학습하는 것에만 익숙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보다 기존의 것을 모방해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모든 문제를 책상에서 풀려고 해 문제해결능력이 약하다. 일본은 이들을 우대했고, 그 결과 일본 사회는 급변하는 세계경제흐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대안은 ‘장인 비즈니스맨’이다. 장인 비즈니스맨은 자신이 처한 현장에서 깊이 파 내려가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해 지하 수맥에 다다른다. 책상에서 데이터와 서류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있는 정보와 경험을 결합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따라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들은 살아 남는다. 그래서 미야기 현립대학 교수인 저자는 직장인들에게 ‘공부 병’ ‘공부하는 고생’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저자가 의미하는 공부의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공부는 오히려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피터 드러커는 “과거 역사를 보면 5~6년간 도제수업을 거쳐 열 일곱이나 열 여덟 살에 한 분야의 기술을 터득한 장인은 평생 써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러나 탈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식을 가진 어떤 사람도 4~5년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책상에 앉아 머리만 굴리거나, 현장에서 몸으로만 때우는 시대는 지났다. 결국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래저래 세상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상호/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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