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또 교향악단에서 지휘활동을 하며 문득 학생들이나 청중들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은 지금으로부터 200년전 사람들이며 그들의 음악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녹아 있다. 그것들과 우리는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이유로 음악의 '신토불이'를 주장하며 극단적으로는 서양음악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하지만 내가 학생시절부터 품어온 생각은 우리가 서양음악을 배워 그 문화가 도입된 이상, 그 본질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것만이 서양음악이 이 땅에 정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왔다. 그 본질이란 그 문화의 '시대적 양식'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일부 음악가들이 일으킨, 음악연주에 있어서 시대적 양식을 반영하고자 하는 이른바 '정격연주' 열풍은 이제 일반적인 흐름이 되어 베토벤 교향곡의 바그너식 해석이라는 난센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연주계에는 이러한 바람이 아직 미치지 못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음악의 시대적 양식을 가르치는 데 소홀하다. 그저 기술적 전수가 우선한다. 이를 조장하는 것은 물론 입시와 콩쿠르다. 화려하고 복잡한 기교가 곧 음악적 표현의 전부인 것인 양 하는 풍토로는 서양음악의 토착화는 요원하다.
청중도 음악을 더 이상 서커스 보듯 하지 말아야 한다. 고전음악 감상이란 옛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이다. 그 시대적 양식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 언어를 통역 없이 듣게 되고, 그 지고지순한 정신적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민 지휘자 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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