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7월8일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바타유가 파리에서 작고했다. 65세였다. 바타유는 소설 '눈 이야기', 에세이 '에로티즘' '문학과 악' 같은 책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작가다. 소설은 그의 문필 생활의 반쪽이었다. 나머지 반은 비평적-학술적 글쓰기에 바쳐졌다. 파리의 국립고문서학교에서 중세 문헌을 연구하고 마드리드의 스페인고등연구원에서 니체와 프로이트를 탐독한 바타유는 그 뒤 소설을 쓰면서도 비평가-인문학자로서의 자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오래도록 그의 생업은 국립도서관 사서였다.소설이든 이론적 글쓰기든, 바타유의 저작들을 휘감고 있는 것은 공포와 외설이다. 바타유 자신은 그것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 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매독 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바타유가 태어나기도 전에 장님이 되었고 그가 세 살 때 몸이 마비되었다.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바타유는 특히 아버지가 소변을 볼 때면 눈의 흰자위만 드러났다고 두렵게 회고한 적이 있는데, 이 기억은 '눈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엽기적 장면들의 기원이었다.
바타유는 10대 후반에 잠시 가톨릭에 귀의했지만, 이내 기독교를 버리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정치적 실천도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기독교도로 남았다면 성적 상상력의 끝간데를 보여주는 그의 소설·에세이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거룩한 것의 위반으로서의 성(性), 금제의 위반으로서의 성이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죽음과 연결되고, 불연속적 존재의 연속성으로 이어지며, 완전성의 손상에 기초한 고뇌의 상호 소통을 낳는지에 대한 탐색이 그의 평생의 일감이었다. 바타유가 1946년에 창간한 잡지 '비평'은 바르트, 푸코, 데리다 등의 초기 작업들을 널리 알리는 무대가 되었다. 바타유는 뇌동맥경화증으로 생애의 마지막 7년은 걷지 못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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