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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심심한 나라를 꿈꾸며

입력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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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에서는 스트레스를 '적응하는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모든 생활사건'으로 정의한다. 조사에 의하면 가족의 죽음, 건강의 상실, 실직 등이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받게 하는 생활사건이다. 스트레스는 꼭 부정적 사건에 의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취직, 승진, 결혼 등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 또한 적응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분명히 스트레스다.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개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게 된다. 도망가거나 문제를 덮어 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개는 불안 초조해지고, 만성화되면 우울해질 수 있다. 맞서 싸우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근육이 긴장되고 혈압이 오르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이 역시 만성화되면 두통, 고혈압, 과민성 대장염 등 신체질환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재신임 파문, 대통령 탄핵과 총선, 이라크 전쟁과 파병, 행정수도 이전, 위도 핵 폐기장 문제, 주한미군 감축 등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크든 작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이 채 1년도 안된 사이에 일어나고, 또 이야기되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 등 모두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줄을 잇는가 하면, 국민연금, 카드 빚 등 우리를 걱정하게 하는 일들도 잇따른다. 태풍 매미가 지나가고, 조류 독감, 만두 파동까지 이어진다. 교육과 실업, 부동산 그리고 북핵 문제 등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뒷목을 무겁게 하고 있는 이미 만성화된 스트레스들이다. 분명 좋은 일들이긴 하지만 주5일제, 고속철, EBS 수능 강의, 대중교통 개편 등도 우리에게 적응과 변화를 요구한다.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자살도 하고, 이민도 간다. 이미 출산율도 세계 최저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불안감에서 모든 사건들에 대해 너무도 관심을 쏟는다. 그러다 보면 거꾸로 하루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들이 다시 줄을 잇는다.

이런 와중에도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꿋꿋이 버티고 사는 우리 이웃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안쓰럽고 불쌍하다. 우리나라가 좀 심심해졌으면 좋겠다. 따분해서 우울해졌다는 환자들 좀 봤으면 좋겠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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