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원 구성이 지난 7월 5일 마침내 완료되었다. 법정 개원일인 6월 5일부터 정확히 한 달 걸린 셈이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대 정당이 치열하게 벌인 밥그릇 싸움이 일단 끝났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군소 정당들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상생의 정치, 민의에 입각한 생산적 국회를 기대했던 국민들의 여망 역시 두 당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이 한 달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나라 안팎에서 터졌다. 경제위기의 실체를 둘러싼 시비와 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하반기 우리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피폐해진 민생과 민심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요 노동조합들의 연이은 쟁의와 파업은 경제에 주름살을 더하고 사회 불안을 가중시켰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정파와 지역 간의 대립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한편 주한미군 재배치와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국민들 사이에 이념적 대립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터져 나온 김선일씨의 피랍과 야만적인 살해 소식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외교력과 통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7대 국회는 개원과 함께 분출한 이 수많은 국정 현안들을 외면한 채 오로지 밥그릇 싸움에 골몰함으로써 파탄에 이른 대의민주주의 재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여야는 맥 빠진 인사청문회 끝에 이해찬 총리 임명을 간신히 인준해 주었다. 그리고 원 구성도 안 된 가운데 김선일씨 사망에 대한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하겠다면서 이 역시 위원장 자리를 놓고 한참 티격태격하다가 간신히 가동시켰다.
과반수가 넘는 새 인물들을 뽑아 주고 또 새로운 원내 정당구도를 형성해 줌으로써 그야말로 일신된 민주 의정을 국민들은 기대했었다. 그러나 17대 국회의원들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킴으로써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민생과 민의는 줄기차게 외면한 채 권력 부스러기를 둘러 싼 대립과 정쟁으로 일관하다가도 정작 자신들의 공동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치는 파렴치한 구태가 17대 국회 출범과 함께 재현된 것이다.
비례대표제의 제한적 도입은 여성들의 원내 대표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그러나 여성의원 진출 효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적지 않은 여성 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얼굴과 입 역할을 맡아서 지극히 당파적인 정쟁에 몰입해 있는 반면 호주제 폐지 등 양성평등의 추진이라든가 보육정책 등 여성복리 추진을 위해 여성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협력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어느 여성 비례대표 의원의 로비 의혹은 여성정치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더욱 자극한다.
이 모든 모습들은 우리가 지난 선거에서 정말 보다 나은 인물들을 선택했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 또 국회 개혁을 국회의원들의 자율적 판단과 결정에 맡겨 놓을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국회의원과 의정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를 강화하고 이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들을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낀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적절한 제한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국민소환제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또 국회 윤리특위의 활동 역시 실질적으로 강화되어야 하며 특위활동에 시민적 의사를 반영시킬 수 있는 방안 역시 도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개혁을 위한 협의 과정에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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