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깜짝 우승으로 끝난 유로2004는 공격지향적으로 변해온 현대축구에 경종을 울려준 대사건이었다. 결승전이 밋밋한 경기로 끝나 흥미가 반감됐다는 비난도 많지만 수비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프랑스 포르투갈 등 강팀들은 대부분 공격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4-2-3-1 전형을 구사했지만 옛날식 축구라는 폄하에도 극단적인 수비위주의 5-4-1 전형을 채택한 오토 레하겔 감독의 고집 앞에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레하겔 감독은 90년대 이후 압박축구가 대세를 이루면서 도태된 스위퍼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면서 공격 때는 3-4-3전형으로 전환, 역습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5-4-1은 5명의 수비수와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3명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원톱을 두는 전술로 주로 카운터 어택을 사용하는 팀들이 채택하며 한일월드컵 때 터키가 사용한 바 있다.
그리스가 물론 수비축구로 우승을 했지만 이것은 수비위주의 전술 덕분이라기 보다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대인마크와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이 맞물려 일궈낸 우승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체코 또한 4-4-2와 3-5-2를 수시로 바꿔 구사하면서 강한 체력과 대인마크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팀이다. 특정 스타에 의존하기 보다는 팀플레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대인마크를 기본 수비전술로 하는 3-5-2 전형을 구사하며 우승한 이후 98년 월드컵 때까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98월드컵에서 4-4-2 전형으로 우승하자 무게 중심이 다시 4-4-2로 이동했다.
유로2004는 대세가 4-4-2에서 4-2-3-1전형으로 이동하는 과도기로 분석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4-2-3-1은 강팀들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원톱과 3명의 공격형 미드필더간에 피드백이 원활해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4-2-3-1은 고난도의 전술로 다양한 공격 루트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채택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축구는 3백 또는 4백의 전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플레이스타일의 문제 즉 압박축구의 완성도에 있다. 압박축구는 3-5-2나 4-4-2에 관계없이 수비와 최전방 사이의 간격이 20~30m 내외로 미드필드에서의 공간확보 싸움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번 대회에서 현대축구의 최대 화두인 압박은 더 강해졌고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이 강팀의 필수조건임이 확인됐다.
그리스가 어설픈 공격보다는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빠른 역습과 집중력 있는 세트플레이로 떨어지는 개인기를 극복한 것은 기로에 있는 한국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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