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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밤에 고향을 떠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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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밤에 고향을 떠난 친구

입력
200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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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농촌을 떠난다. 딱딱한 마당에 풀씨가 날아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람이 밟고 다니던 마당이 금세 바랭이와 개망초밭이 된다. 이듬해부터는 쑥과 억새 같은 여러해살이풀이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 사람 살던 집이 이태 만에 쑥대밭이 되고 마는 것이다.집을 비운 지 5년쯤 되면 그 동안 사람 훈김을 받지 못해 한쪽 추녀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마당의 사정도 더욱 고약스러워진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붉나무와 가중나무, 싸리나무 같은 관목들이 뿌리를 내린다. 담장이 허물어지고 추녀는 점점 땅으로 내려앉는다.

고향에 가도 동네 둘러보기가 겁난다. 지금은 풀밭으로 변한 저 마당에서 우리는 딱지를 치고 비석치기를 하다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주먹질을 하며 놀았다. 친구 집 마당가에 서서 예전에 그 집에 살던 친구 이름을 가만가만 부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모두 나처럼 도시로 떠났다. 일찍 떠난 친구도 있고, 늦게 떠난 친구도 있다. 가장 마음 아프게 떠난 건 영농후계자로 비육우다, 특용작물이다, 이것저것 다하며 고생만 하다가 빚만 잔뜩 지고 온다간다 말없이 밤에 떠난 친구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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