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투자를 더 기피한다. 중소기업은 빚을 내서라도 벌어들인 돈 이상으로 투자를 하지만, 대기업은 빚 갚고 자사주 사들이고 현금만 쌓아두면서 번 돈의 70%도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6일 한국은행이 총자산규모 70억원 이상 외부감사대상법인 4,622개 제조업체의 현금흐름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들은 업체당 평균 706억원의 현금을 벌어들여 463억원만 투자활동에 충당했다. 93억원은 금융기관 빚을 갚았고, 63억원은 주주배당금으로 지급했으며, 19억원은 주가관리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여 불태우는데 썼다.
나머지는 고스란히 현금으로 쌓여 있다. 업체당 평균 보유현금은 2002년말에 비해 70억원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평균 20억의 현금을 벌어, 25억원을 투자에 투입했다. 부족자금은 금융기관 차입이나 증자로 해결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금수입 대비 투자액으로 본다면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설비투자에 훨씬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대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으니 현금흐름은 더 개선됐고, 중소기업은 출혈투자로 인해 현금흐름이 더 나빠졌다. 지난해 현금흐름이 나빠진 업체(53%)가 개선된 업체(47%)보다 훨씬 많았다.
이 같은 대기업-중소기업의 대조적 현실을 배제한 채, 제조업 전체로 본다면 업체당 평균 현금수입은 116억1,000만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의 '현금잔치'였다. 그러나 투자를 위해 쓴 현금은 업체당 평균 86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기계류 같은 설비투자용 유형자산구입에 쓴 돈은 72억3,000만원으로 1994∼97년 평균치의 63%에 불과했다. 팔아치운 자산 등을 뺀 순지출 역시 60억5,000만원(환란전 대비 57%)에 그쳤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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