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개봉해 미국 전역을 강타한 마이클 무어(50)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Fahrenheit 9/11)이 22일 한국에 상륙한다.당초 1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미국 개봉 첫 주말 흥행대박으로 미국 내 배급사가 스크린수를 868개에서 1,710개로 대폭 늘렸고 이에 따라 극장 상영용 필름인 프린트 수급에 차질이 생겨 국내 개봉이 1주일 연기됐다. 미국에서는 개봉 첫 날 2,4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각종 인터뷰와 TV뉴스화면 등을 재구성한 ‘화씨 9/11’은 2001년 9ㆍ11 테러 당시의 엄청난 폭발음과 시민들의 비명 등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스크린에서는 거의 2분여 동안 아무 것도 비춰지지 않는다. 이어 스크린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테러가 남긴 처참한 풍경과 피투성이가 된 미군들의 모습 등이 투영된다. 영화는 이후 123분 내내 9ㆍ11 테러 대처과정을 둘러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무능력과, 1980년대부터 계속돼 온 부시가(家)와 사우디의 빈 라덴가와의 금전적 결탁, 이라크 파병의 문제점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권력자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무자비한 공격은 관객에게 상당한 재미를 준다. 대표적인 장면이 9ㆍ11테러가 터진 순간, 한 유치원을 방문해 동화책을 읽어주던 부시 대통령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백악관 참모가 부시에게 귓속말로 테러발생 사실을 알려주지만 부시는 7분여 동안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눈만 깜빡거린다. 화면 왼쪽에는 그 안타까운 시간경과를 알려주는 디지털시계가 계속 작동된다.
매스컴을 통해 대외 이미지에만 치중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도 그대로 까발렸다.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부시는 주먹을 불끈 쥐며 “테러를 일으킨 살인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특유의 결연에 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성큼성큼 뒤로 물러서서 골프의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데 열중한다. 이 장면은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무어의 ‘카메라 특종’이기도 하다.
무어 감독의 공격적인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의사당에 들어가는 의원들을 일일이 붙잡으며 “당신 아들도 이라크에 파병하도록 서명해주시죠”라고 묻는 무어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처연하다. 이같은 장면은 2002년 ‘볼링 포 콜럼바이’에서 찰턴 헤스턴 미국 총기협회장의 인터뷰를 거절당하면서도 끝내 카메라를 들이대던 저널리스트 무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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