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손호철의 정치논평]진보를 다시 생각한다
알림

[손호철의 정치논평]진보를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04.07.06 00:00
0 0

얼마 전 한 정치학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다 아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의 설명은 그 이상이었다.즉, 그동안 한나라당이 그나마 인기를 유지한 것은 노 대통령이 잊을 만하면 말실수 등으로 점수를 잃어 주었기 때문이고 한나라당 최고의 선거전략은 노 대통령인데, 탄핵을 해버리자 노 대통령이 업무정지에 들어가 국민의 시선에서 사라져 득표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하자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시작했고 그 결과 한나라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에 임명해야 한다고 비아냥거린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어쨌든 노 대통령의 업무 복귀 후 행적 중 잘못된 것 중의 하나는 연세대 강연이다. 이 강연은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가져온 것도 문제지만 그 내용도 부정확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강연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진보로 놓고 보수를 공격했는데 문제는 과연 노 대통령이 진보냐는 것이다. 특히 최근 논쟁이 보여 주듯이 노 대통령처럼 주택공사와 같은 공기업의 주택원가 공개도 시장원리를 해치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보라면, 민주노동당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보, 보수는 크게 보아 세 가지의 이해방식이 있다. 하나는 내용과 상관없이 변화에 저항하면 보수, 변화를 바라면 진보라는 이해방식이다. 소련 몰락 당시 공산당을 보수파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방식에 따르면 햇볕정책의 유지를 바라는 노 대통령이 보수이고 이의 변화를 바라는 한나라당은 진보라는 논리가 성립해 문제가 많다.

두 번째 방식은, 요즈음 언론에서 후보자들의 이념적 성향 조사 등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진보, 보수를 이념적 내용으로 하되 정도의 차이로 이해하는 상대주의적 이해방식이다. 평등을 중요시할수록 진보이고 그 반대일수록 보수라는 식으로 점수를 내서 비교하는 것인데,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권영길 민노당 후보를 제외하곤 경선후보를 포함한 전체 후보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이 진보이고, 공화당이 보수라는 분석도 이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는 이념적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예를 들어 무솔리니가 히틀러보다 덜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진보라고 보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덜 보수적이라고 해서 진보라고 보는 것은 미국 정치가 유럽과 달리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정당이 부재하고 보수양당제를 핵심적인 특징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진보라고 상정한 것도 바로 이 같은 방식에 의한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진보라면, 왜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보수일변도의 정치라고 비판해 왔고, 민노당의 원내 진출을 42년 만의 진보세력의 원내 진출이라고 대서특필했겠는가.

진보, 보수에 대한 가장 올바른 이해방식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로서 이를 지지하면 보수, 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사회민주주의 등을 주장하면 진보라고 보는 절대적 방식이다. 이같은 방식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으로서 보수이다. 구체적으로 한나라당식의 수구 내지 냉전적 보수와는 구별되는 개혁적 보수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의 눈에 노 대통령이 진보로 보이는 것은 역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수구적 틀에 갇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히틀러의 눈에는 무솔리니도 진보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