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불법 사용했다는 '안풍(安風)'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문제의 자금 출처를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실체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과 함께 검찰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서울고법 형사7부(노영보 부장판사)는 5일 국가예산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삼재 전 의원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강 전 의원이 돈세탁 대가로 금융기관 직원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에 대해서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심에서 검토하지 않았던 안기부 계좌 2,000여개를 확인한 결과, 1993년에만 안기부 잔고가 비정상적으로 1,293억원 증가했고 이는 외부자금 유입의 결과로 보인다"며 "관련 문서 파기로 구체적 자금원을 확인할 수 없지만 강 피고인측의 주장대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자금 전달 경로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전달경로를 함구하던 김 피고인이 뒤늦게 강 피고인에게 직접 건넸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 등으로 미뤄 김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의지로 보이고, 안기부 계좌에서 인출된 수표가 2∼11개월 이후에야 비로소 신한국당 계좌에 입금된 점 등도 중간에 제3자가 개입한 증거로 보인다"며 김 전 대통령의 개입을 사실상 인정했다.
안풍 사건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신한국당 관계자 등이 1995년 6·27 지방선거와 96년 15대 총선에서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불법 전용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1심 재판부는 국고손실 등 기소 혐의를 대부분 인정해 강 전 의원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731억원, 김 전 차장에게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추징금 125억원을 선고했다.
한편 대검 중수부(박상길 부장)는 "대법원에 상고해 최종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안풍 사건 재수사 및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사여부에 대해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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