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들의 고전비틀기 발레보며 원없이 웃었다발레를 보면서 이렇게 깔깔 웃기는 처음이다. 4일 일본 도쿄 후생연금회관에서의 남성코믹발레 ‘그랑 디바’의 공연은 2,000석의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1996년 뉴욕에서 생긴 이 단체는 남자들이 발레리나의 치마를 입고 토슈즈를 신은 채, 여자 춤을 춘다. 전세계에서 모인 19명의 남자가 긴 속눈썹을 달고, 예쁘게 화장까지 한 채 귀엽게(?) 춤 춘다.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단체는 일본에서 인기 최고다. 8년째 매년 60회 일본 전역을 돌며 공연 중인데, 늘 매진이다. 보고 또 보는 이른바 ‘리피타(repeater)’ 관객이 60%, 팬클럽 회원도 3,000명이나 된다.
이 단체의 레퍼토리는 40여편, 주로 ‘백조의 호수’ 등 고전을 패러디한 것이다. 4일 공연도 ‘백조의 호수’ 2막으로 시작했다. 악마가 등장해 백조를 불러내니 난데없이 바퀴 달린 백조인형이 굴러 나오질 않나, 쫓겨서 달아나던 백조가 벽에 부딪혀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질 않나. 거의 엎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남자들의 춤이니 여자 흉내를 낸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뻣뻣하고 억세다. 익살맞게 과장된 동작이 많아 더욱 그러하다. 백조는 우아하고 가냘픈 날갯짓 대신 푸드덕 거리며 돌아다닌다.
발란신의 작품을 패러디한 ‘바로크로 가자’는 뚱뚱한 남자 발레리나가 나와 또 다시 폭소를 자아낸다. 말라깽이 발레리나만 원했던 발란신이 이걸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웃을까, 아니면 화를 낼까. ‘그랑 디바’의 유머는 ‘빈사의 백조’에서 정점을 이룬다.
죽어가는 백조의 처연함 대신 가히 엽기적인 꿈틀이 백조를 보여줬다. 목에서 어깨, 팔을 거쳐 손 끝에 이르는 근육을 몽땅 움직여서 놀랍도록 요동치며 큰 굴곡으로 출렁대는 몸짓은 기교로서 압권이기도 하지만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장면이다.
이어진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신도 익살과 유머의 연속이다. 동작 하나 하나는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이 올렸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에서 가져다 비튼 것이 많다.
이날 공연은 ‘밍쿠스 갈라’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화려하고 흥겨운 ‘돈키호테’ ‘파키타’의 하이라이트 모음인데, 토슈즈를 신고 발 끝으로 선 채 32회전을 하는, 남자무용수로는 상상하기 힘든 묘기까지 그대로 보여줬다.
고전 발레의 엄격한 형식미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그랑 디바’를 보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망가진’ 발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웃자고 하는 쇼’라고 치면,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랑 디바’는 8월12~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도쿄=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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