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집을 담보로 1억5,000만원을 대출 받아 보증금 내고 찜질방에 들어갔는데 이 돈을 다 날려 자식 손자들까지 거리에 나앉을 판입니다."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대형 찜질방에서 일하는 유유선(54·여)씨는 지난달 업주가 문을 닫으면서 보증금을 모두 날리고 결혼한 딸 집까지 은행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2001년 10월 문을 연 이 찜질방은 주말이면 2,000명이 찾을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장사가 잘 안되자 업주가 입점 상인들에게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하고는 갑자기 영업을 중단해 버렸다.
업주는 이미 찜질방을 담보로 25억원을 빌린 데다 이자도 수개월째 연체한 상태. 은행이 찜질방을 경매로 넘길 것을 통보하면서 보증금을 내고 영업해 온 매점 식당 구두닦이 입욕원 이발사 마사지원 등 13명이 총 7억4,300만원의 보증금을 날리게 됐다. 대부분 찜질방이 잘 된다는 소리에 무리하게 돈을 끌어다 장사를 시작한 영세상인들이지만, 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려 받아 낼 길이 막막하다. 더욱이 이들에게 대출 보증을 서주거나 담보를 제공한 가족과 친인척 수십명도 가진 재산을 모두 잃을 처지에 놓였다. 유씨는 "나 때문에 자식 가정에까지 불화가 생겨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먹였다.
수년 전부터 웰빙 열풍을 타고 동네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찜질방과 헬스클럽이 불황에다 여름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2개월 전 경기 분당의 한 대형 찜질방이 문을 닫은 뒤 입점 상인 15명이 보증금 14억6,000만원을 날리게 됐고, 부산 해운대의 R찜질방 역시 최근 경매에 넘어가 10여명이 맡긴 보증금 14억원을 돌려받을 길이 막혔다.
찜질방의 경우 최근 대형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점 상인만 10여명에서 많게는 20∼30명에 이른다. 한 곳이 부도나면 웬만한 빌딩 지하상가 전체가 줄도산하는 것과 같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 부산경남일반노조 이승섭 위원장은 "찜질방 업주들이 입점 상인들에게서 거둔 보증금으로 시설을 마련하고는 불황으로 장사가 안되면 문을 닫아버려 영세상인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올 들어서만 벌써 40∼50개의 찜질방이 문을 닫았으나, 여름이 지나면 절반 정도가 넘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말했다.
'몸짱'신드롬에 편승해 마구잡이로 늘어난 동네 헬스클럽도 사정은 마찬가지. 경기 부천시 원미구에서 300평짜리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박미경(42)씨는 5명의 코치를 모두 내보내고 남편과 둘이서 꾸려가고 있다. 박씨는 "길 건너편에 생긴 400평짜리 헬스클럽의 저가 공세를 이기지 못해 한 달 벌어봐야 아이들 학원도 못 보낼 지경"이라며 "3억원이 투자된 시설을 2억원에 내놓았지만 팔릴 기미가 없어 억지로 문을 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네 목욕탕은 이미 쑥대밭이 된 지 오래다. 동대문구 장안동 청호탕 주인 김정기(56)씨는 "주변 목욕탕 5,6곳이 모두 문을 닫고 이제 나만 남았다"며 "3년 전에 비해 손님이 70% 이상 줄어 기름값 대기도 벅차 올 가을까지만 버텨보고 안되면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김수철 사무총장은 "찜질방이 유행처럼 늘어나는 데다 기름값이 치솟고 불황까지 겹쳐 그나마 남은 동네 목욕탕도 태반이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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