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언'이라는 저서에서"시장이 강력한 정부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전망, 큰 파장을 일으켰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미국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사진)가 9·11 테러를 계기로 종전의 입장을 수정, "강력한 국가만이 현재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그는 4일 영국 가디언지 일요판인 옵서버에 기고한 '다시 국가를 거론하며'라는 글에서 "레이건―대처 시대에는 국가의 영역을 줄이고 민영화와 시장이 강조됐지만, 테러와 전쟁하고 있는 지금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력이 다시 요구되는 시기"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힘이 단선적으로 미칠 수 있는 영역(scope)과 국가가 효율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힘(strength)을 구분한 뒤 "세계의 모든 혼란과 부조리, 불균형은 영역이 아닌 힘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브라질 터키 멕시코 등은 국가가 간여하는 영역이 지나치게 크지만 효율성은 없는 나라인 반면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은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작용하지 않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국가의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정치의 주요 과제였던 레이건―대처 시대는 끝나 가고 있다. 엔론 월드콤 등의 회계감사 스캔들과 영국의 철도 민영화와 캘리포니아 전력사태에서 빚어진 문제들은 국가 통찰력이 없었던 데서 비롯됐다. 9·11 테러는 냉전이후 핵심적 현상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20세기 세계질서에 큰 혼란을 일으킨 원인이 독일과 일본, 구소련 등 지나치게 강력한 국가들 때문이었다면 빈곤 난민 인권 에이즈 테러에 이르는 현재 문제들은 국가의 힘이 지나치게 허약한 개도국이 야기한 것이다. 북미에서 발칸, 중동과 남아시아에 이르는 국가들의 붕괴는 극렬 이슬람운동과 테러의 배경이 되고 있다.
9·11 테러가 주는 교훈은 아프간과 같은 빈곤·분쟁지역에서의 통치권 부재가 선진세계에 엄청난 안보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미국은 또 하나의 불쾌한 진실, 즉 미국은 전세계에 군사력을 뻗치고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지만 이들에게 강력한 통치력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제도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국제사회 역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분쟁 후 재건을 맡은 유엔은 정통성이나 효율성에서 모두 허약하다. 닷컴 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급진 이슬람주의자들까지 자유롭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들은 인질을 참수하는 비디오를 공개하는 데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은 합법적으로 권력을 독점한 국가이다. 막 시작되고 있는 포스트 레이건 시대에서 국가의 해체 못지않게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의 재건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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