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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대통령 언론관' 이용하기

입력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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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고위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적응이 빠른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 대통령이 등장하면 순식간에 그의 생각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대통령의 생각이 독특한 것일수록, 그곳에 기회가 있기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참여정부 들어 대표적인 사례는 '언론관 따라하기'일 것이다.성균관대 인사개입 사건도 그 배경에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관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하지만 오지철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청탁에 나선 것이 김모씨 때문이 아니라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의 아내이기 때문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정동채 문화부 장관의 개입여부를 떠나, 여기까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오 전 차관이 움직인 것은 서프라이즈 칼럼들의 질 때문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 매체에 공개적으로 기울인 각별한 관심과 호감 때문인 것이다.

최근 외교부 상황실에서 일어난 '희망이 보입니다' 사건의 언저리를 살펴보면, 언론이 역설적으로 참여정부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노 대통령이 왜 불행하게도 그 시간에 상황실에 들어섰는지 알지는 못한다. 도착 직전, '알 아라비야'라는 아랍 언론이 "김선일씨 살해시한이 연장됐다"는 결정적 오보를 날린 게 이유를 짐작케 할 뿐이다.

대통령의 질문에, 최근 언론의 표적인 이종석 NSC사무차장이 역시 언론과 악연이 있는 최영진 외교부 차관에게 보고를 권했다.

그는 지난해 노 대통령 앞에서 "비를 맞으며 가판기사를 빼러 나가고… 공보관의 일은 기자에게 술 사주는 것이며… 대통령의 방미 방일 성과가 좋았는데 제대로 보도가 안되고…" 등 극단적인 과장법을 구사한 분이다. 그는 다음 인사에서 차관으로 발탁됐고, 운명의 밤에 대통령에게 또 한번 과장된 보고를 하게 됐다.

이쯤 되면 참여정부는 언론 때문에 꼬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더욱 큰 폐해는 사태를 수습하는 일마저 언론 때문에 초점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의 책임자들이 대통령이 싫어하는 한 두 신문을 걸고 넘어져 반격을 가하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이 신문들의 과장보도는 사건의 파생물에 불과한데도 마치 모든 것인 양 논쟁에 열중한다.

대통령이 잘못된 낙관론을 들을 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장관은 "우리가 범죄자냐, 미 국무부는 전화 한 통 받지 않았다"며 소리를 치고 있다. 불러모은 기자들 앞에서 대통령이 허위보고를 받는 사태가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그 보고자는 벌써 정부 공신력을 실추시킨 책임을 졌을 것이다. 또 납치사태에 대비한 위기관리계획을 만들지 못했거나, 부작위(不作爲)를 방치한 책임은 분명 NSC에 있다. 그런데도 이 기관은 한 보수 신문의 기사에서 오류를 찾아내 공개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여당의 비례대표 로비 논란 역시 같은 패턴으로 흐르는 조짐이다.

이 같은 행태는 이미 '따라하기' 를 넘어 대통령의 언론관을 악용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실책을 다른 곳에서 만회하고, 이슈를 옮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논란거리를 모두 매달고 국정을 운영해 나가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종종 국정의 부담을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긍정적 수단으로 사용됐다. 반드시 비판에 떠밀려 행사된 것만도 아니다. 잘못된 기사가 잘못된 정책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유승우 정치부 부장대우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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