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발표된 신행정수도 후보지평가위의 평가 결과는 4개 후보지에 대한 계량적인 평가 순위를 넘어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 확정의 의미를 갖는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본 궤도에 진입하게 됐다.그러나 야당을 필두로 한 정치권과 서울·수도권의 지자체들, 그리고 학계와 일부 단체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결사 반대하고 있어 향후 일정 추진에 논란이 예상된다.
넘어야 할 난관 수두룩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지난해 12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천도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 입장으로 선회한데다 서울·수도권 지자체와 학계 일각에서 국민투표를 주장하고 있어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앞으로 많은 난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 달초 수도이전특위를 구성할 것을 각 정당에 제안했다. 또 국민투표 여론 조성 등 본격적인 행정수도 반대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어서 정부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서울시와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대표 최상철)도 이 달 중순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이해관계가 극명히 엇갈리는 문제로 지금부터 이전 규모, 성격, 의미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될 것"이라며 "결국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원마련도 순탄치 않을 듯
정부 여당은 신행정수도 이전지가 연기·공주로 결정됨에 따라 9개도시 순회 공청회 등을 통해 대국민 이해와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 거주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후보지에서 탈락한 지역과 인근의 주민들도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힘겨운 여정이 예상된다. 후보지로 선정된 연기·공주 지역 인근의 주민들도 향후 10년간 건축허가, 토지형질변경 등의 개발 행위가 사실상 금지돼 이에 대한 재산권 침해 집단소송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건설비 11조원을 포함 총 45조6,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토연구원 등 각 연구기관마다 이전 비용이 달리 나오는 데다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있어 향후 예산편성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지난 2년간 충청권 지역의 땅값이 100% 안팎이 올라 토지 수용 과정에서 소유주들의 저항도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300만평에 대한 토지 보상비로 4조6,000억원을 책정했으나 부동산 관계자들은 최대 6조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총 100조원 단위의 엄청난 재원과 천도 수준의 국가적 중대 과업을 수행하는 국책 사업인 만큼 심도 깊은 사회·경제적 측면의 타당성 조사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이전 대상·규모는
신행정수도 이전지가 연기·공주로 사실상 결정되면서 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국회와 법원 등 헌법기관의 신행정수도 이전 여부가 다시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에 따르면 국회, 대법원 등 헌법기관은 전 기관이 이전 대상인 행정기관과 달리 별도의 국회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지난달 초 주요 공공기관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행정기관은 물론, 국회와 대법원까지 이전 대상 기관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행정수도 이전의 범위를 넘어선 사실상의 천도"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헌법기관 이전 문제는 일단 주춤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수도권 지역에 수요가 많은 법원과 국회의 이전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도 입법·사법기관의 이전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도 국회와 대법원을 제외한 행정기관만의 이전이라면 수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대법원 역시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법원 수요적인 측면 등을 고려할 때 굳이 이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만약 국회와 대법원이 이전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신행정수도는 말 그대로 행정기능만 옮겨가는 '전문 행정수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신행정수도는 현재의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경기 과천시 보다 약간 큰 사실상의 대형 신도시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규모가 축소되면 신행정수도의 효용성 논란과 함께 소모적인 신행정수도 이전논란을 야기한 정치적 책임 공방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한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한나라당은 5일 정부가 충남 공주·연기를 행정수도 입지로 사실상 확정 발표한데 대해 "다수 국민과 야당의 반대 목소리를 묵살한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라고 비난했다. 동시에 국회 수도이전 특위 구성과 국민대토론회 실시 등을 통해 수도이전 자체의 타당성을 처음부터 검토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박근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히 국민의 의사를 묻겠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밀어붙이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참여정부를 자처했으면 많은 국민의 생각을 모아서 추진해야지,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면 나중엔 정부도 감당키 어려워질 것"이라며 "신중히 검토할 시간을 갖고 최선의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국민적 합의는커녕 여권 내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밀어 붙이기를 중단하고, 국회 특위를 구성하고 국민 대토론회를 열자는 한나라당의 제안을 전면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국회 특위를 통해 수도이전의 타당성과 실현가능성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서울시·경기도 반응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자체들은 5일 일제히 유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의회가 주도적으로 행정수도이전 반대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는 이번 평가결과에 대해 "국민적 합의없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이뤄진 일방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수도 이전은 국가 전체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결정"이라며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과 서울시의회가 다음주 제기하는 헌법소원 절차가 시작되면 수도이전의 허구성이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를 통해 행정수도이전의 부당성을 검증해나가고 시의회의 반대투쟁을 물밑에서 지원해줄 방침이다.
경기도 역시 "국민의 우려와 반대를 무시하고 국가적 손실에 대한 대책도 없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발표"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도는 "행정수도 이전은 타당성, 비용 등에 대한 국민적 토론과 국민투표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 관계자는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행정수도를 이전할 경우 강한 국민적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며 "그럴 경우 현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그 어떤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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