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전망은 슬금슬금 올리고, 경제성장률 전망은 은근슬쩍 내리고…."정부의 안이한 경제인식과 대책에 대한 정치권의 질타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가 최근 들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에 대한 전망을 자주 바꿔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물경제 흐름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부실한 전망, 수출호조에 기댄 '착시현상' 속에선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경기대응책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오락가락
그동안 줄곧 '2분기 경기회복'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6월 중순 이후 서서히 '낙관론'을 거둬 들이고 있다.
그는 6월18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소비와 투자가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더니, 7월1일엔 "하반기 성장률이 상반기보다 조금 더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풀린다는 것이 정부의 변함없는 분석이었는데, 이 부총리는 슬며시 '상고하저(上高下低)'의 경기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6월 중순 이전엔 낙관론 일색이었다. 이 부총리는 3월3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6% 성장 가능론'을 내세웠고 4월2일 기자브리핑에선 "우리 경제가 점차 정상궤도를 찾아 회복 국면에 진입한 상태"라며 "고용과 소비회복이 2분기부터 가시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4월28일 뉴욕 한국경제설명회에선 "올해 성장률이 5.5%를 넘을 것"이라고 톤을 낮췄고, 2개월만인 6월25일엔 5.3∼5.5%로 재조정했다.
내년 전망도 오락가락 하기는 마찬가지. 이 부총리는 6월10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5.3∼5.4%인데, 여기다 외국인투자와 경기활성화, 여성과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가 추가되면 내년에 6%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더니 보름만인 6월25일엔 "내년에는 올해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인 5% 정도가 될 것"이라고 물러섰다.
연초 물가 전망 이미 빗나가
소비자물가 전망도 연초엔 3% 안팎에서 출발하더니 이젠 3.5%를 훌쩍 넘어섰다.
이 부총리는 3월4일 "한국은행이 내부 분석한 결과 원자재 가격상승률이 당초 예상했던 3%에서 6%로 높아져 올해 물가상승률이 당초 전망치보다 0.3% 포인트 오른 3.2%로 추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6월25일엔 "물가가 6월중에 3%까지 올라가고 7,8월에는 4%를 넘어 갈 가능성도 있으나 올해 전체 상승률은 3.3∼3.5%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과 일주일뒤인 7월1일엔 "3.3%는 아닌 것 같고 3.5%보다 조금 더 올라갈 것 같다"고 수정했다.
낙관론 안주하다 경기대응 실패
이처럼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정책 실기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2일 당정협의에서 "한달 전 당에서는 '소주가 안 팔릴 정도로 어렵다'고 했는데 그때 경제부총리는 2분기에는 나아진다고 얘기했고 정부 일각에서는 여름이 오는데 무슨 난로가 필요하냐는 말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홍 의장은 이어 "6월초부터 경기회복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지만 정부는 한달 동안 시간을 허비했다"며 "정부가 수출호조에 따른 착시현상에 빠져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내수경기 침체가 성장기반을 훼손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데도 정부는 수출호조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에만 안주, 경기대응에 실패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또한 정책의 중심이 로드맵 같은 중장기 청사진에 치중되면서 단기적인 대응에는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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