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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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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소리나는 어린이집’을 찾아서

입력
200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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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갈현동 ‘소리나는 어린이집’ 덩실방의 모둠(토론) 시간. 오이(이곳에선 교사의 별명을 부른다)가 먼저 말을 꺼낸다. “오늘 나들이는 어디가 좋을까.” 양반다리로 의젓하게 앉아있던 형곤이가 나선다. “오이, 오늘은 놀이터 가자.” 모두들 좋아하는 눈치인데도 오이가 제동을 건다. “놀이터는 어제 갔으니 오늘은 뒷산이 어때.” 하연이와 손정이가 “어제 갔다고 오늘 못 가란 법이 있나”라고 어깃장을 놓자 오이는 “놀이터에선 함께 이야기를 못하잖아. 선생님은 뒷산에 가 너희들이랑 책도 읽고 꽃도 찾아보고 싶어”라고 설득한다. 아이들이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오늘 나들이가 뒷산으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부모들이 출자해 직접 교사를 채용하고 운영도 맡는 ‘대안 어린이집’의 하나인 ‘소리나는 어린이집’의 하루는 이렇게 아이들과 선생님간의 불꽃 튀는 토론으로 시작된다.

- 토론으로 시작한 하루 일과는 오직 놀기

1997년 갈현동의 마당 넓은 집을 임대해 만든 ‘소리나는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곳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함께 나누던 36가구가 출자해 만든 일종의 공동육아협동조합이다.

32명의 아이들과 6명의 교사들이 꾸며가는 왁자지껄 ‘꿈공장’인 이곳에서 아이들의 하루 일과는 첫째도 놀기, 둘째도 놀기다. 오전에 간식 먹고 나들이 가고, 들어와 마당에서 놀다 점심 후 낮잠 시간. 다시 일어나 그림 그리기, 악기 배우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한글이나 영어는 절대 안 가르친다. 다른 유치원에 다니다 온 하연이는 “전에 있던 곳은 선생님도 별로 없고 마당도 없어 심심했는데, 여기는 나들이도 매일 가고 공부도 안 시켜 너무 행복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공동육아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가 교사에게 반말을 한다는 점이다. 버릇없는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지만, 부모나 교사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형곤이 엄마 주점란(36)씨는 “처음엔 물론 그런 걱정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서고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라고 자신했고 교사대표 여치(여미현ㆍ27)도 “반말과 별명을 사용하는 것은 교사와 아이간에 허물없이 지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 교사와 아이의 벽 허무는 반말과 별명

모둠이 끝날 무렵, 주방의 구수한 냄새가 2층으로 올라온다. 영양교사 항아리(유은화)가 마련한 점심메뉴는 미역국, 생선구이, 감자볶음. 공동육아에선 생협에서 판매하는 100% 유기농만 먹인다. 생선을 다듬던 항아리에게 그래도 가끔 조미료를 쓰지 않느냐고 슬쩍 떠봤더니 “부모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음식”이라며 “사카린이 무서워 김밥에 단무지도 안 넣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진(5)과 범진(4)의 어머니 정명숙(34)씨에게 “조기교육이네 선행학습이네 하며 모두들 야단들인데 저렇게 놀다 학교에 적응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당당하다. “수학이나 영어를 안 가르쳐도 불안하지 않아요. 어릴 적 자연과 함께 놀던 기억이야말로 아이 인생에서 보이진 않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될 거라 믿기 때문이죠.” 실제로 공동육아에서 아이들 일과는 인근 산이나 개울 또는 공원에서의 바깥나들이와 어린이집 넓은 마당에서 맘껏 뛰놀기가 대부분이다. 다은(6)이 아빠(홍기원ㆍ45)도 거든다. “아이는 자연 속에서 자라야 해요. 도심 속 유일한 자연은 마당입니다. 콘크리트 벽에 갇혀 온종일 장난감이나 만지던 아이에게 최소한의 자연을 주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어요.”

- 운영비는 적자, 웃음은 흑자

물론 공동육아의 비용도 만만치않다. 출자금이 가구당 400만원이 넘고 한달 보육료가 40만~50만원에 이른다. 형곤이 엄마는 “흔히 공동육아는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오해”라며 “오직 아이를 위해 아끼고 덜 쓰며 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부모는 아이교육에 깊이 관여하면서 교사를 믿고, 교사는 수익에 신경쓰지 않고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덩실방 담임 오리(김지은ㆍ25)는 “지난해엔 500만원의 적자가 났는데 부모님들이 군소리 하나 없이 메워줬다”며 “모든 돈이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공동육아 참여방법과 부모의 역할

공동육아를 하려면 조합을 구성해 어린이집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시설에 합류해야 한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려면 약 30가구 정도가 필요하며 가구당 300만~400만원씩을 출자해 건물을 마련해야 한다. 출자금은 탈퇴할 때 반환가능하며 어린이집 운영은 매달 납부하는 30만~50만원 정도의 보육료(지역에 따라 다름)로 충당한다.

기존 시설을 이용하려면 보내고 싶은 어린이집에 대기자 명단을 제출한 후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중간에 들어갈 때도 출자금과 가입비를 내야 한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동육아 시설이 56개에 불과해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공동육아는 무엇보다 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어린이집 운영 외에도 청소, 일일교사,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된다. 공동육아에서는 이를 아마(아빠 엄마의 줄임말) 활동 이라고 한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국(www.gongdong.or.kr) 정영화 간사는 "많은 부모들이 아마활동을 하며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며 "공동육아가 아이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정서적 유대감을 불어넣은 셈"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친목을 넘어 아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역 공동체 형성도 가능하다고 것. (02)814-3606,8606.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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