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PX(Post Exchange)는 미군의 존재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하다. 국산은 모든 게 조악하던 시절, 재래시장 '양키 물건' 가게에 쌓인 인스턴트커피 비누 두루마리휴지 화장품 통조림 양주 등 불법 PX 유출품은 최고 사치품이었다. 베트남 참전장병들은 목숨 걸고 번 달러 군표로 PX에서 TV세트 등 최신 가전제품과 사치성 생필품을 사들여 귀국화물 박스를 채웠다. 이 것들은 돌아온 김 상사를 반기는 시골 잔치마당에서 구경거리였다. 베트남의 아들이 고향 집에 보낸 원두커피를 미제 보약으로 알고, 가마솥에 끓여 온 동네가 한 사발씩 나눠 마셨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도 있다.■ 우리 현대사의 애환과 이렇게 얽힌 미군 PX는 1895년 처음 설치됐다. 군부대에 보급품 아닌 생필품과 각종 서비스를 싼 값으로 제공하는 임무다. 두 차례 세계대전 때 수백 만명을 해외파병하면서 규모가 커지자 육군과 공군은 AAFES(Army & Air Force Exchange Service), 해군은 NEXCOM(Navy Exchange Command)으로 나눠 PX 관리조직을 국방부 산하에 만들었다. 민간기업 형태인 AAFES는 '미군이 가는 곳은 어디든 간다'는 모토대로 국내외 고정기지는 물론, 파나마 소말리아 아이티 등의 임시 주둔지역에도 48시간 안에 이동 PX를 설치한다.
■ 최근 바그다드 공항에 버거 킹 식당을 연 AAFES는 영화관까지 갖춘 종합쇼핑센터 형태 PX를 미국과 해외 35개국에서 운영한다. 공식 고객은 미군과 군무원 및 가족 870만명 정도지만, 불법 유출되는 면세물품 고객은 몇백 배에 이를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해외개입 역사와 더불어 잘 알려진 AAFES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김선일씨 피랍사건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엉뚱한 추리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김씨의 가나무역이 AAFES에 납품했고, AAFES는 미군 장성이 이사진을 구성할 만큼 미군과 밀접한 업체이니 김씨 납치 정보도 알았을 것이란 식의 추리다.
■ 이는 복지지원단 성격의 AAFES 이사진에 복지담당 군장성이 참여하는 것을 곡해한 것이다. 일선 조직은 민간인 군무원들이 맡을 뿐이어서, 군 고급정보나 인질구출 등에 관여할 처지가 아니다. 따라서 가나무역과 AAFES의 관계를 깊이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문제는 여기에 신경 쓰느라, 김씨가 동행한 미 군수지원업체 KBR의 군수물자 수송트레일러와 무장 호송요원이 함께 납치됐다는 보도는 간과한 것이다. 이게 사실이면 KBR와 미군은 당연히 실종된 물자호송대 수색과 구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김씨 실종은 몰랐다는 게 의혹의 진짜 핵심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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