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도 감독들의 무덤이었다.‘미니월드컵’으로 불리는 유로2004가 결승전만을 남겨 놓고 있는 가운데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 하차한 감독들이 많다. 16개국이 23일간 축구전쟁을 벌인 유로2004에서 최대 희생양은 선수도, 팬들도 아닌 감독들이다.
제 아무리 카리스마와 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감독들도 초라한 성적 앞에서는 할말을 잃었다. 대회 기간 중 가장 먼저 지휘봉을 놓은 감독은 ‘녹슨 전차군단’으로 전락한 독일의 루디 푈러(44) 감독.
‘죽음의 조’ D조에 속했지만 독일이 체코 네덜란드에 밀려 탈락한 것은 치욕스런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푈러 감독은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계약돼 있지만 감독이라는 자리는 첫 라운드에서 떨어지고 나면 경질논란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며 사표를 냈다.
이탈리아 조바니 트라파토니 감독도 스웨덴과 덴마크의 돌풍에 8강진출에 실패, 결국 사임했다. 한일월드컵서 한국에 패배, 8강 진출이 실패했을 때도 감독직을 유지했던 트라파토니는 결국 이번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자리를 내놓았다.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무적함대’ 스페인의 이나키 사에스 감독도 8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뢰블레 군단’ 프랑스의 자크 상티니 감독은 이미 예정된 사퇴였지만 불명예의 멍에는 벗지 못했다. 대회에 앞서 잉글랜드 토튼햄과 계약한 상티니 감독은 8강전에서 그리스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모양새가 썩 좋지 않게 됐다. 그리스에 패한 프랑스는 98년 프랑스월드컵이후 처음으로 ‘무관’으로 전락했다.
우여곡절끝에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를 4강에 진출시킨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결승진출이 좌절되자 사임의사를 표명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내주 협회로부터 모종의 언질이 있겠지만 나는 그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아드보카트감독은 4강에 진출했지만 조별리그 체코전서 선수기용 잘못으로 역전패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반면 이번 대회를 통해 주가를 높인 감독들도 있다. 포르투갈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과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이다. 대회전 성적에 관계없이 포르투갈을 떠나겠다고 공언한 스콜라리 감독은 결승진출이 확정되자 “2년간 (포르투갈팀과의) 결혼생활을 더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막전서 그리스에 완패한 스콜라리 감독은 과감히 젊은 피를 기용하면서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8강전서는 루이스 피구를 교체하는 승부수가 성공하면서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복병 그리스를 이끌고 결승까지 진출한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은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의 스타 감독. 안정된 공수조율과 변화무쌍한 전술로 포르투갈 프랑스 체코를 꺾는 파란을 연출한 레하겔 감독은 조국인 독일의 차기대표팀 감독 1순위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여동은 기자 dey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