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해찬 의원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 그는 매우 진보적인 인물로 비쳤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그를 위험 인물로 경계하기까지 했다.그로부터 6년 후 총리가 된 그는 이제 매우 진보적이지도 않고 위험한 인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고, 그도 변했다. 13대 국회부터 내리 5선을 기록한 경륜으로, 52세라는 나이로, 그가 세상을 보다 넓게 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취임 후 발언들에서 느껴진다.
젊은 세대가 개혁의 깃발을 흔들어대는 열린우리당에서 그는 개혁세력의 맏형인 동시에 '진보 속의 보수'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이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대통령과 총리는 코드 맞추느라고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서로 신뢰하고 보완하면서 효율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3년 8개월 정도 남은 대통령 임기 안에 반드시 이루려는 개혁 목록을 제시해야 한다. 개혁, 개혁 소리만 높이지 말고 구체적인 과제에 접근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반려로, 내각의 수장으로, 여당의 맏형으로, 국정을 이끌어 갈 이해찬 총리에게 기대하는 제일의 덕목은 상식과 균형 감각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으려면 상식과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균형감각은 실패와 혼란을 줄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밝은 눈을 갖게 하고, 판단력을 높이고, 정권의 품격을 지켜준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사회가 혼란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의 핵심과 그 주변에서 균형감각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김선일씨 피살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혼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전향을 거부하다 숨진 간첩 등 3명에 대해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일어난 파문은 모두가 균형감각 상실에서 빚어진 것이다. 그러한 사태들은 가치관의 혼돈과 갈등을 부르고 있다.
이라크에서 테러집단에 의해 참수된 김선일씨에 대한 국민적 애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에 따른 절차의 성격을 정부는 분명히 정리하지 못했다. 테러에 희생된 민간인의 장례인지, 국토를 지키다 죽은 군인의 장례인지, 또는 어떤 '열사'의 장례인지 혼란스런 행사였다.
정부 대처가 미흡했다는 빗발치는 여론과 사회적 압력에 밀린 나머지 정부는 모든 요소가 복합된 절차로 그의 유해를 맞이하고 장례를 도왔다. "국립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족의 요구는 그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누구로부터도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 역시 심각한 균형감각의 붕괴를 보여준다. 의문사위의 규정에 의하면 의문사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죽음'이다. 남파간첩 등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사망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끝까지 '사상의 자유'를 지킨 그들이 결과적으로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통일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남과 북에서 사상의 자유를 지키다 숨진 사람 등 분단의 희생자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의문사위는 시대를 잘못 읽고 너무 멀리 빗나갔다.
이런 혼란 속에서 누군가 책임 있는 사람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잘못된 흐름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분노와 불안을 느끼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달래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해찬 총리는 총리 지명 후 몇 차례의 인터뷰에서 분명한 화법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궤변이 아닌 소신을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경제정책, 개혁 방향 등에 관한 그의 설명은 '알아듣기 힘든 말'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선 알아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위험한 급진파'에서 '개혁의 노병'으로 국민 앞에 선 이해찬 총리에게 큰 기대를 걸고 싶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점과 약점, 열정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총리가 할 일에 대한 답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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