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고지도에 '한국해' 표기가 등장할 때까지 서양은 동해를 '동양(東洋·Ocean Oriental)', 동쪽 큰 바다로 이해했다. 지리정보가 적어 단순히 방위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그러다가 인식이 넓어지면서 타베르니에와 마누엘 고딩유의 '한국해' 지도(본보 6월 28일자 A23면 시리즈 1회 참조)가 등장했다.18세기에 들어서면 '동양'은 지금의 태평양을 가리키는 표기가 되고, 이와 별도로 지금의 동해(East Sea)라는 인식이 나타난다. 1703년 니콜라스 드페르(1646∼1720)의 아시아 지도는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로 타르타르인은 그곳을 동해(Orientale)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 지도를 근거로 20여 년 '동해'가 사용되다가 '한국해'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한국해'는 서양 지도 제작자들 사이에서 한반도의 동쪽 바다를 대표하는 이름이 된다.
'동해'가 '한국해'로 변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프랑스 기욤 드릴(1675∼1726)의 지도이다. 그는 1700년 아시아 지도에서 동해를 'Mer Orientale'로 표기하다가, 1705년엔 'Mer Orientale ou Mer Coree'로 바꿔 '한국해'와 병기했다. 그러다가 1723년 아시아지도에서는 '동해'를 빼고 '한국해'만 단독으로 썼다. 드릴과 동시대의 지도 제작자인 네덜란드계 영국인 허만 몰(?∼1732) 역시 1720년에 이미 'Sea of Korea'라는 표기를 썼다.
이러한 변화는 서양의 대표적인 지도제작자와 지도학자들이 모호한 방위 개념보다 '한국해'라는 고유의 명칭을 더 나은 표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해 표기가 사용된 것은 1700년에서 172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이며, 이 기간에 생산된 서양 고지도는 전체 고지도의 5% 정도에 불과하다. 1730년 이후 명성이 떨어지는 지도제작자가 만든 동해 표기의 지도까지 더해도 그 숫자는 10% 미만이다.
동해 표기를 주장하는 국내 연구단체는 '한국해'가 '동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지도에서 지역의 이름이 바뀌는 것을 연장선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방위를 의미하는 '동해'라는 모호한 개념에서 구체적인 '한국해'로 바꾼 17, 18세기 서양 고지도 제작자들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인 것이다.
/이돈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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