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때 170병상에서 현재 500병상, 1일 외래 환자 3년전 90명 남짓에서 현재 600명 육박. 지난달 20일로 개원 세돌을 맞은 국립암센터가 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병원과 함께 암 치료병원 빅5에 올라섰다.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메이저 대학병원의 유명 암 전문의들까지 놀랄 정도이다. 지리적으로 국립암센터와 가까운 일부 대학병원의 경우 폐암이나 대장암 환자가 30~40%까지 줄었다. 대장암 수술의 권위자인 박재갑 원장(서울대의대 교수 겸임), 폐암 항암치료 전문가인 MD 앤더슨 흉부종양내과 교수 이진수 박사, 미국 미네소타 대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 조관호 박사 같은 몇몇 의사를 제외하곤 이름 난 암 명의는 오히려 대학병원에 훨씬 더 많이 포진하고 있는데 국립암센터가 암 환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많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의 불빛으로 등장한 국립암센터의 명과 암을 들여다본다.
- 11개 진료센터 통한 환자중심 시스템
국립암센터에는 내과, 외과, 방사선과 같은 진료과목 중심의 과가 없다. 대신 간암 폐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등 11개 진료센터가 있으며, 각 센터마다 수술전문의, 종양내과전문의, 방사선과 전문의, 간호사가 배치돼 환자를 맞는다. 환자들은 수술이나 항암제 투여, 방사선과 치료를 받으러 이 병동 저 병동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 박재갑 원장은 “위암센터 간암센터 폐암센터 등으로 센터화하는 환자 중심의 통합진료 시스템으로 승부수를 던졌다”고 말했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출신의 노정실 국립암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센터화가 되면서 의사는 물론 간호사들도 훨씬 전문적인 치료를 펼치게 됐고, 치료 결정과정도 신속해졌다”면서 “환자들도 고정된 의사, 간호사들로부터 집중치료를 받는 게 효과적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아직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의료현실상 외과 의사가 수술도 하고 항암요법도 하는 경우도 많은데, 국립암센터에서는 항암요법은 철저히 종양내과의사가 맡아서 하고 있다. 노정실 박사는 “신설병원이었기 때문에 새 시스템이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대학병원이 기존의 진료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환자에게 다가가는 진료서비스
이진수 병원장은 “우리나라 환자들에게 ‘무슨 약 먹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한결같이 ‘빨간약 노란약 그리고 물약 먹고 있어요’ 라는 식으로 대답해 놀랐다”면서 “자신의 약이 무슨 성분인줄 모르고 복용하는 환자가 태반이어서 매주 환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고 말했다.
환자중심의 진료시스템은 환자의 사생활 보호에도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환자의 입원실에는 환자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일단 암환자는 입원하면 병실이동이 거의 없으므로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도 의료진들에게 혼동을 일으킬 염려는 없다.
이진수 원장은 암 병기 4기와 말기 환자는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선 암환자들이 4기라고 하면 암치료를 포기해야 할 단계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서 “4기는 분명히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시기로 수명연장을 위해 의료진도 환자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 암 치료비도 상대적으로 저렴
국립암센터는 대학병원이 아니어서 10년 이상 경력의 의사만 특진비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5~6년 경력의 조교수부터 특진비를 받는 대학병원에 비해 비슷한 경력의 암센터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을 경우 상대적으로 진료비가 조금 저렴하다. 병상 당 연간 수익이 국내 유명 대학병원의 경우 2억3,000만~2억9,000만원이라면 국립암센터는 1억8,000만~1억9,000만원 정도에 머무른다.
- 금연 등 암예방 운동 앞장
암예방도 국립암센터의 주요 임무다. 암센터 개원시 병원 내에서의 완전 금연령을 선포했던 국립암센터는 금연운동의 전국민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박 원장은 “흡연은 암 발생 원인의 20%, 암으로 인한 사망 원인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면서 “신문 라디오 TV등 언론매체에 흡연장면을 추방한 건 금연운동 15년 역사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2년에는 방송 3사를 방문해, 흡연 장면 방영의 금지를 호소해 흡연 장면 방영 금지결정을 이끌어냈고 2003년에는 신문사를 역시 일일이 방문, 신문에서 흡연사진을 게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미디어로부터 얻어냈다.
담배부담금의 대폭 인상도 국립암센터가 앞장 서 제안했다. 박 원장은 “국민건강증진기금 재원이 확대되면 가급적 상당 부분은 담배로 건강을 잃게 된 희생자들을 위한 치료비로 사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방사선 치료의 새 지평을 연다
2005년 말부터 가동 예정인 양성자 치료기는 암센터가 자랑하는 대표적 기기. 조관호 양성자 치료센터장은 “ 양성자 치료기는 암의 위치에 따라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 암의 위치에 따라 에너지를 조절, 종양에 정확하게 필요한 방사선을 투입할 수 있어 부작용 없이 완치율을 높이는 ‘꿈의 방사선 치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양성자 치료기는 설치하는 데만 480억 이상이 소요되는 국내 최고가 암치료 장비다.
- 대학 병원과 경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국립암센터의 급팽창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않다. S병원의 A 교수는 “국립암센터는 암환자 진료보다는 암의 예방 진단 치료법 개발 등 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중심으로 가야 한다”면서 “대학병원과 경쟁하기 보다는 대학병원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체하는 기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말기 암환자나 경제능력이 없는 환자들을 위한 진료기능, 대학병원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실시등에 더 역할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국립암센터가 지방 국립의과대에 설치할 예정인 지역암센터 설립에 대해서도 사립병원들은 반대입장이다. 이미 많은 예산을 들여 암치료시설을 설치한 지방의 사립대학병원들이 있는데 왜 의료비를 불필요하게 중복투자하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립암센터측은 “현재 암센터 병상의 절반이 지방환자가 차지하고 있다”면서 “지방환자들의 불편을 덜고 지역 의료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진수 병원장은 “삼성서울병원이 타 대학병원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의료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듯 국립암센터도 세계 암연구의 메카로 불리기 위해선 훌륭한 임상성과를 올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영주 의학대기자 yjsong@hk.co.kr
■인터뷰- 박재갑 원장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차 개원을 성공적으로 이뤘으니 이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제2의 개원을 준비하겠습니다.”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은 “돈 많은 사람들이 암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국립암센터를 계획대로 키워가면 우리나라 암환자들은 물론 해외교포나 외국인들 암환자들도 한국을 찾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원장은 “이를 위해 2005년 암센터내에 12층 규모의 국가 암 검진지원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라며 “암 검진자의 반은 외국인 환자로 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암센터는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유엔 6개 국어로 된 현판식을 가졌다. 또 국제화에 대비, 병원 홍보 책자도 외국어로 제작했다.
그는 “최근 무역협회 소속 국내 수출 100대 CEO들을 초청해, 암센터 국제화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면서 “CEO들에게 ‘외국 바이어에게 술 대접 대신 암예방 검진 대접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기업이 스폰서 하겠지만 암센터가 차차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면 외국인들이 직접 돈 내고 암검진 하러 오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영주 의학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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