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거리의 제왕’ 히참 엘 게루즈(29ㆍ모로코)가 왕좌를 빼앗겼다.엘 게루즈는 3일(한국시각) 로마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골든리그 남자 1,500㎙ 결승에서 3분32초64로 8위에 그쳤다. 2000시드니올림픽 이후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엘 게루즈는 이날 아홉 수에 걸린 탓인지 불멸의 연승행진을 자신의 나이인 29로 마감했다.
운명의 장난인 듯 이날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한 로마 올림픽스타디움은 1998년 자신이 1,500m 세계기록(3분26초00)을 세웠던 곳이다. 96년부터 83차례의 레이스에서 81번의 승리를 거둔 그는 최근 세 번의 레이스에서 각각 0.03초, 0.04초, 0.05초차의 승리를 지켜 1위자리를 위협 받아왔다.
지난해까지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4연패를 일궈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뽑은 ‘2003육상 올해의 선수’ 엘 게루즈를 왕좌에서 끌어내린 것은 바레인의 ‘젊은 발’ 라시드 람지(23). 람지는 올 최고기록(3분30초25)으로 결승선을 끊었다.
람지의 고국은 공교롭게도 엘 게루즈와 같은 모로코. 그는 지난해 바레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모로코를 위해 뛰었다. 제왕의 그림자를 벗어난 람지는 올해 부다페스트 국제실내육상선수권 800m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출발은 엘 게루즈가 가장 좋았다. 두 명의 페이스메이커를 앞세워 여유 있게 달리던 엘 게루즈는 마지막 바퀴에서 람지, 버나드 라가트(케냐), 메흐디 발라(프랑스)와 함께 선두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마지막 바퀴에서 갑자기 속력을 낸 람지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오직 승리가 나의 행복”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엘 게루즈는 경기 후 “밀치락달치락하는 레이스가 복싱경기 같다”고 투덜댔다. 단박에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떠오른 람지는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엘 게루즈 등 세 명이 내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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