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교육부가 2003년 10월 실시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분석한 결과, 쓰기와 관련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2002년 3%에서 2003년 3.77%로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소수점 이하로 표시되는 변화이기에, 조사결과의 의미가 명료하게 와 닿지는 않았다. 교육의 문제점이 드러난 징후적인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했고,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할 만한 낙관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는데,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 교수의 조사가 눈에 띄었다. 민 교수가 실시한 초등학생의 국어능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95년 남학생의 평균 점수는 50.5점이고 여자는 52.8점이었다. 하지만 2001년 조사에서는 각각 42.3점과 46점으로 나타났다. 6년 사이에 최소 6점에서 최대 8점까지 낮아진 것이다. 초등학생의 한국어 사용능력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쓰기와 관련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높아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추정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출제 의도나 경향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맞춤법과 관련된 문제가 많았다면,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맞춤법에 관한 지식을 물었다고 해서 기초학력과 국어능력에 관한 조사의 의미가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 수준에서 필요한 맞춤법은 기계적인 암기가 아니라 일상적 사용을 통해서 습득된다. 따라서 기본적인 맞춤법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문법 수업시간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읽고 쓰는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의 언어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불행하게도 언어능력만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단기 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왕도가 따로 없는 것은 우리들이 이미 왕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그것이다. 언어능력은 사고력·이해력·표현력을 배양하는 포괄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언어능력의 향상은 책읽기·글쓰기·말하기 등과 관련된 일반 교양과 관련되는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교양은 동서양의 고전을 폭 넓게 섭렵하라는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의 교양은 지식을 검색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지식을 소통할 수 있는 일반적 능력을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까지 동급생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었다. 부모가 고민 끝에 일부러 유급을 시키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늘날의 빌 게이츠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다름 아닌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교양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의 공립 도서관이었다. 훌륭한 독서가가 되지 않고는 참다운 지식을 갖출 수 없다…. 나는 평일에는 매일 밤 1시간, 주말에는 3∼4시간의 독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독서가 나의 안목을 넓혀준다."(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에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자주 쓴다고 해서 빌 게이츠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 책읽기와 사회적 성공 사이에는 아주 느슨한 인과관계가 성립될 따름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얻은 교양이 빌 게이츠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된 후, 서점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의 모습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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