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치고 CF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신문을 펼치거나 TV를 틀면, 자의든 타의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CF이니 당연하겠죠. 옛날에는 광고가 나오면 애써 외면하거나 채널을 돌리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CF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고 드라마여서 재미있기도 하고 크고작은 감동을 주기도 하니까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잡지못하는 CF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지금 TV에 권투시합 장면이 나오네요. 실황중계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스포츠의류업체 CF입니다. 그런데 선수가 여자네요. 더구나 상대방 선수의 얼굴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누구더라. 아, 무하마드 알리.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문구로 유명한 선수이죠. 어릴 적 우상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다죠.
그가 지금 어떻게 링위에 올라왔을까요. 자세히 보니 전성기 시절 알리의 모습이네요. 한데 저 여자는 누구죠? 최근 권투선수로 데뷔한 알리의 딸이랍니다.
그럼 이 장면은 이미 링에서 은퇴한 아버지와 딸과의 대결이 되는군요. 전성기 시절 그의 발놀림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딸의 손놀림에 당황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압권입니다. 자신을 압도하는 딸의 실력에 대견한 듯 살짝 웃음짓는 알리의 표정은 가히 예술입니다.
뭐라고 하는 지 들어볼까요?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했다. 여자는 권투를 할 수 없다고.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싸워라, 내 딸아, 넌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덧붙은 광고카피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불과 15초의 짧은 시간이지만 몇 시간짜리 영화, 아니 수십회 분량의 대하드라마도 주지 못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CF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불가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제를 이보다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요.
단순한 상품광고를 위해 만들어진 CF가 이제는 예술작품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짧은 CF 몇편이 이어지면 짜임새가 탄탄한 드라마가 됩니다. 월드컵때 CF를 통해 붉은악마의 응원가를 배우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정확하게 ‘오! 필승코리아’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을 외쳐댈 수 있었을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CF를 만드는 사람들, 또다른 21세기의 문화코드를 생산하는 그들의 세계를 지금부터 한번 들여다 볼까요.
/사진 김주성기자 poem@hk.co.kr
/한창만기자 cmhan@hk.co.kr
■'CM계의 서태지' 김도향
김도향. 한때는 TV를 켜면 하루에 몇 번씩 그가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고, TV CM송의 대가로도 주가를 올렸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돌연 사라지더니 흰 수염을 기른 명상음악가로 다시 나타나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사이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TV CF 촬영현장에 그가 재차 나타났다. 도인의 이미지를 벗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그는 이번에 만든 CM송은 자신의 3,001번째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3,000이라는 숫자는 이전까지 엄청난 양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1은 새로 시작하는 의미란다. 1973년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줄줄이사탕’이 그의 데뷔작. 이후 삼립호빵, 아카시아껌, 뽀삐화장지, 동원양반김, 스크류바 등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을 유명 CM송을 양산해냈다.
CM송 작곡가로 잘 나가던 그는 80년대 중반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정신의 황폐함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도인생활을 하며 작곡한 명상음악이 한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10년 전 산에서 은둔하고 있을 당시 LG로 이름을 바꾼 럭키금성측 관계자가 브랜드 로고송을 만들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즉석에서 만든 작품이 ‘사랑해요 LG’였다. 이 음악은 지금도 LG의 대표송이다.
“광고주가 어떤 주제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머리속에는 악상이 떠올라야 한다”는 김씨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온 음악은 오히려 인기를 얻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최근 일요일일요일밤에 ‘브레인서바이버’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재개한 그는 지금 젊은 가수들이 불러 히트시킨 노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하는 작업에 몰두중이다.
“젊은 층과 중장년 층의 괴리가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며 “노래를 통해 양 세대간의 벽을 허무는 것이야 말로 20년간 도를 닦으며 터득한 정신적 풍요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창민 기자
■ CF감독의 세계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제품이나 브랜드의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는 CF감독,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CF감독은 광고대행사의 PD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가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선배 감독밑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다진 조감독이 메가폰을 직접 잡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CF감독은 800여명. 그러나 이중 상위 10% 가량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감독의 지명도에 따라 의뢰가 몰리기 때문에 빈익빈부익부현상이 어느 곳 못지 않게 심하다.
CF 한편 당 감독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600만~3,000만원선. 유명감독일수록 많이 받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루 정도를 찍고 이 정도 돈을 받으니 수입이 짭짤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20~30명의 스탭에게 월급을 줘야해 여러 편을 찍지 않으면 제작사를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CF감독은 박명천(002데이콤 짱가시리즈, LG사이언디카폰, LG-디오스), 김규환(풀무원, 애니콜, 00700), 차은택(올림푸스, 스카이, TTL, 모토로라), 박성민(X-Canvas, BC카드, X-Note), 박준원(KTF NA, 맥도날드, 래미안, LG사이언), 김상태(서울우유, 하이마트), 백종열(현대카드M 영화패러디 시리즈), 김찬(대한항공, 꽃을든남자, 카스) 등이다.
대부분이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TVCF대표 김용필씨는 “그 시대의 코드를 빨리빨리 읽어내 대입시켜야 한다는 CF의 특성 때문에 젊은 감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감각이 떨어지면 광고주나 대행사가 외면하기 때문에 CF감독의 길이 평탄치 않다”고 분석했다.
/한창만기자
■광고제작 현장을 가니…
지난달 25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T빌라. 입주가 한달 이상 남은 텅 빈 빌라의 한 곳에 아침 일찍부터 촬영진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각종 액세서리와 촬영장비를 세팅,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담하고 예쁜 거실을 꾸며놓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날 출연진 5명중 3명은 어린이. 집중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과의 작업이어서 오늘 일진이 썩 좋을 것 같지 않다.
어린이들과 함께 촬영하려면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감독의 충고에 스탭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촬영을 맡은 김수 감독은 제일기획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다 최근 CF감독으로 데뷔, ‘인조이유어라이스데이’, ‘백설’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통해 감성에 호소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날 촬영은 롯데제과의 간판급 케이크인 카스타드 광고. 롯데계열사 광고대행을 거의 도맡는 대홍기획측은 최근 경쟁업체에서 유사한 제품을 출시한 터라 마음이 초조하다. 보다 확실하게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광고컨셉을 내놓지 않으면 자칫 ‘카스타드=롯데’라는 등식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머리를 맞대고 기획, 최종으로 내놓은 컨셉은 부드러운 카스타드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자는 것. 그래서 나온 광고카피는 ‘조금만 부드러워지면 세상이 행복해진다’이다. 아랫층에 사는 아빠와 딸이 윗층에서 울리는 쿵쾅대는 소리에 질려, 따질 듯이 올라가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건네는 것은 부드러운 카스타드라는 것이 줄거리이다.
감독의 ‘레디~액션!’사인과 함께 필름이 돌기 시작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이어진다. 15초짜리 광고로 이날 소화해야할 장면은 10컷 정도. 짧은 장면이지만 최적의 장면을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참석한 스탭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감독, 조감독을 비롯, 촬영감독, 조명감독, 코디,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아트디렉터, 배우는 물론, 광고대행사 AE와 PD까지 합쳐 30명이 넘는 인원이 방을 가득 메웠다. 이 인원이라면 촬영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필름이 돌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도 첫번째 컷의 오케이사인이 떨어지지 않는다.
“얘들아, 카메라를 쳐다 보지 말고, 그래 계속 웃어야지. 컷. 5분간 쉬고 다시 찍겠습니다.”
감독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아챈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지자, 스탭들이 진화에 나선다. “촬영 끝나고 먹고 싶은 것 뭐든지 말해, 아저씨가 다 사줄 게.”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자 촬영은 계속되고 1시간30분만에 첫 장면을 찍는데 성공했다.
다음 장면을 위해 장비를 다시 세팅하는 데 왁자지껄 분주하지만 다음 컷사인이 들어가면 쥐죽은 듯 고요한 상태에서 배우들의 대사소리만 들려온다. 한컷 한컷 어렵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를 훌쩍 넘었다.
이틀 뒤인 27일 오전 8시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정발산공원. 해태제과의 새 빙과제품 ‘트위스트킹’ 광고를 찍기 위한 촬영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숙련된 촬영팀의 손놀림이 분주하더니 이내 야외 세트장이 마련됐다. 지난 5월 ‘트위스트킹 딸기’편에서는 문방구, 방, 옥상을 배경으로 촬영이 진행됐으며 이날은 신제품 ‘트위스트킹 파인애플’ 출시에 맞춰, ‘과일장수편’으로 꾸며진다.
광고대행사 LG애드는 제품을 띄우기 위해 깜짝 게스트를 섭외했다. 포크가수 출신에서 CM송 전문작곡가로 변신, 1970~80년대 한국 CM계 대부로 이름을 떨쳤던 김도향(59)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오래전 경쟁회사에서 생산한 비슷한 종류의 빙과 CM송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어, 아예 그런 이미지를 이어가자는 것이 이번 CF의 컨셉이다. 이미 앞 시리즈에서 CM송을 작곡한 김씨를 모델로 기용, 직접 노래까지 부르게 했다.
주택가에 파인애플을 팔러온 과일장수가 파인애플 대신 파인애플맛이 나는 빙과를 권하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 제품이 꽈배기처럼 꼬인 빙과류라는 점에 착안, 노래와 함께 몸을 좌우로 비틀며 춤을 추는 것이 포인트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소비자들에게 노래와 춤을 자주 노출시켜 국민적인 CM송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라고 한다.
과일장수로 변신한 김씨가 과일차 위에서 몸을 좌우로 비틀며 노래를 시작하자 차량앞에 모였던 손님들이 모두 하나가 돼서 춤을 춘다. 감독은 LG애드에서 PD를 지낸 경험이 있는 최영철씨. 이전에 제작한 트위스트킹 시리즈와 현대증권(You First), 월드컵공익광고 등을 연출, 잘나가는 감독군에 속해있다.
야외에서 찍는 것이라 아무래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내는 지 김도향씨의 긴장된 모습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공원에 놀러온 주민들이 관심이 지나쳐 오히려 촬영에 방해가 되지만 당초 그들의 공간을 잠시 빌린 터라 촬영팀은 언짢은 심사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컷’소리가 자주 나고, 이 때마다 코디가 달려와 배우들의 화장을 새로 고친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려움 환경속에 한컷 한컷 완성돼가더니 어느새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평소 빨리 찍기로 유명한 최 감독이지만 이날은 오후 5시를 넘겨서야 겨우 촬영을 마쳤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감독의 한 마디에 노련한 스탭들의 현장철거 작업이 발빠르게 이뤄진 뒤 현장을 떠났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이것이 알고 싶다
TV를 켜면 반드시 봐야 하는 CF지만 정작 CF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평소 궁금하던 사항들을 문답식으로 풀어본다.
CF 한편의 제작과정과 제작 기간은 얼마나 되나.
-우선 광고주가 광고대행사에 제작의뢰를 하면 AE, PD, 아트디렉터 등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제작방향이 결정되면 광고주와 함께 컨셉회의를 갖는데 여기서 오케이사인이 나면 광고콘티 제작에 들어간다.
콘티는 촬영용 연출대본으로 주로 만화로 그리는 것이 특징. 3~4가지 주제로 대본을 만든 뒤 광고주와 PPM(제작전 미팅)을 통해 한가지안을 확정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주정도.
이제 모델과 장소 등을 섭외, 촬영에 돌입한다. 완성된 필름에 음향이나 컴퓨터그래픽 등의 추가작업을 거친 뒤 광고자율심의기구의 심의를 거쳐 청소년이나 어린이에게 유해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전파를 타게 된다. 제작의뢰에서 완성본이 방영되는 데는 1달 가량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AE, PD는 어떤 차이가 있나.
-AE는 Account Executive의 약자로,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와의 연락 및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광고주의 마음에 들게끔 광고가 제작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한다. PD는 광고대행사와 CF제작사와의 업무연락을 맡고 있다. PD들의 CF감독 전업이 많은 것도 제작사와의 접촉이 잦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코드를 재빨리 읽어내야 하는 CF감독의 세계. 그래서 젊은 감독이 주류다. 이트디렉터로 일하다 최근 CF감독으로 데뷔한 김수 감독이 촬영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편당 제작비는.
-제품홍보를 위한 TV용 CF의 한편 제작비는 1억4,000~1억5,000만원 수준이다. 물론 모델료는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해외에서 찍는 CF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 때는 제작비가 1.5~2배로 늘어난다.
일부 CF의 경우 아예 외국 감독, 스탭들에게 의뢰해 해외에서 촬영한다. 이렇게 되면 제작비는 10억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돈은 제품가격에 포함되기 때문에 결국 제품단가를 인상시키는 요인이 돼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배우들의 출연료는 얼마정도인가.
-무명배우나 어린이를 기용할 경우 회당 300만가량의 출연료가 지급된다. 하지만 연예인의 지명도에 따라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전지현, 한석규, 고소영, 이영애, 이효리 등 억대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는 서태지는 최근 1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최고의 몸값을 경신했다. 히딩크 감독도 10억원 가량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배경음악이나 장소섭외는 누가 하나.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때 CM송을 많이 사용했으나 요즘은 이미 알려진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CF음악 전문감독까지 생겨났다. 장소는 광고의 컨셉에 따라 기획단계에서 결정되며, CF에 적합한 배경이라면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는 것이 추세이다.
■시대를 읽는다
CF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표현의 한계가 허물어지면서 CF는 이제 그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코드를 농축하고 있다. ‘상업적(Commercial) 메시지를 담은 필름(Film)’이라는 좁은 의미의 CF 개념은 이제 낡은 것이다.
국내 방송에 CF가 도입된 시점은 1950년대 말 TV방송국이 개국할 때였지만 본격적으로 CF가 중요성을 갖게된 것은 80년대 칼라TV시대가 도래하면서부터. 이후 CF시장은 급속히 커졌고 90년대에 들어와서는 급변하는 시대상을 CF에 그대로 담아냈다.
90년대 중반 경기가 좋은 시절 CF의 주된 내용은 코믹이었다. 영화배우 박중훈이 출연한 OB맥주 광고는 재기발랄한 춤과 함께 ‘랄랄라’라는 최고의 유행어를 낳았다.
김정은, 차태현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018 한솔이동통신의 ‘묻지마 다쳐’, ‘닥치라고?’ 등의 광고카피도 큰 인기를 얻었다. 또 IMF가 막 시작될 무렵 방송된 탤런트 전원주가 모델로 나온 002데이콤의 ‘짱가’CF는 30년 무명이던 전씨를 일약 스타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맞아 광고시장이 위축되자 내용에도도 코믹요소가 많이 사라졌다. SK텔레콤의 TTL 등 모호한 이미지의 CF가 등장, 불투명한 미래의 경제상을 대변하는 듯 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반짝 경기가 살아나자 다시 코믹광고들이 활개치기 시작했다. 양미라와 신구를 내세운 롯데리아의 햄버거광고는 연작시리즈로 발표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특히 신구의 ‘니들이 게맛을 알아’는 대박에 가까운 히트로 롯데리아의 매출액을 늘리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롯데칠성의 ‘2%부족할 때’처럼 연작드라마형 CF에는 기존 제작비의 곱절이 들어가는 과감한 투자도 눈에 띄었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고 외친 김정은의 BC카드 CF는 대다수 국민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다시 경기침체가 시작됐고, 지금까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자 다시 정적이고 감성적인 CF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알리 부녀가 등장하는 아디다스CF는 장기불황속에서도 불가능은 없다며 희망담긴 메시지를 전달, 많은 감동을 줬다. 군인, 임산부를 출연시킨 삼성생명의 CF도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자극시킨 감동작.
한편 올해는 유독 패러디광고가 유행하면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현대카드M이 ‘친구’‘살인의 추억’‘스캔들’‘올드보이’ 등 대박 흥행영화를 패러디한 CF로 후발업체의 핸디캡을 일거에 만회했고, SK텔레텍의 스카이를 패러디한 ‘왕뚜껑’CF는 이전에 비해 매출액을 60% 이상 신장시키는 성공을 거뒀다.
중앙대 광고학과 이명천교수는 “CF가 시청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별개의 문화, 정보적 기능을 담당하면서 방송매체의 중요한 컨텐츠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며 “짧은 시간안에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CF의 시대적 상황반영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현대카드M… 패러디로 싼값에 빅히트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는 CF의 세계에서 소비자의 눈에 번쩍 띄는 광고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군계일학처럼 돋보이는 CF 한편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그 업체가 후발주자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영화 패러디 광고로 주가를 올린 현대카드 M이 대표적인 사례.
이 CF의 성공비결에는 광고회사에 근무하다가 올해 초 현대카드로 자리를 옮긴 BM팀 강병규(38) 팀장의 공헌이 컸다는 후문이다. 광고대행사나 CF제작사의 두뇌집단에서 광고와 관련된 모든 컨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카드의 경우 강 팀장이 제작회의에 직접 참가, 적지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가 착안한 것은 전성기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가 대중 친숙도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매체인 반면 영화 명장면의 대사만 약간 바꾸면 큰 돈 들이지 않고 그 자체로 훌륭한 CF가 된다는 것이었다. 동원된 영화는 친구, 올드보이, 스캔들, 살인의 추억 등. CF제작후 시사회에서 대박이 감지됐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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