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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50>통일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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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50>통일 베트남

입력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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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7월2일 개원한 남북 베트남의 통합 국회는 북베트남의 베트남민주공화국과 남베트남의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아우르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출범했음을 선언했다. 이로써 1954년 제네바 극동평화회의에서 조인된 휴전협정이 북위 17도를 남북 베트남의 잠정 군사경계선으로 설정해 그 전까지의 느슨했던 분단을 고착화한 이래 20여년 만에 두 베트남의 법적 통일이 완수됐다. 정치적 통일, 곧 사실상의 통일은 그 전해 4월30일 해방전선의 깃발을 내건 베트남민주공화국 군대의 장갑차들이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으로 진입하면서 이미 이뤄진 바 있다.1954년 7월의 제네바협정이 충실히 이행됐다면 베트남에서는 그 즈음 포연이 사라졌을 터였다. 이 협정에 따르면 그 해에 베트남은 전국적 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구성하고 그 이후 프랑스군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돼 있었다. 그 직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보구엔지압(武元甲) 장군이 이끄는 베트민(越盟)군에게 대패해 5,000여 명의 전사자를 낸 프랑스는 송두리째 전의를 상실해 인도차이나 지배를 포기하고 철군했지만, 베트남 민중의 뜻이 베트민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에게 있다고 판단한 남베트남 정부는 이 협정에 따른 전국 선거를 거부했다. 게다가 미국이 프랑스와 교대해 남베트남을 지지하며 전쟁에 개입하면서 인도차이나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살육이 벌어지게 되었다.

1930년대 말 스페인 내전과 함께 20세기 인류 양심의 시험대로 불렸던 베트남전쟁은 결국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스페인에서 진 인류의 양심이 베트남에서는 이겼다. 베트남전쟁은 역사상 미국이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이기도 했다. 이 더러운 전쟁에 미국의 들러리로 개입한 한국은 1992년 말에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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