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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소설집 낸 여성소설가 3명/이나미, 정미경,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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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소설집 낸 여성소설가 3명/이나미, 정미경, 정지아

입력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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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이리 우울해?! 사는 것도 우중충한데, 왜 맨 날 한숨이고, 죽는 소리야.’만나서 따지고 싶은 중ㆍ단편소설들을, 문단에서는 젊은 축에 드는 세 여성작가가 마치 공모(共謀)라도 한 듯 책으로 엮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죽음의 이야기이고(이나미 ‘빙화), 또 하나는 폭력(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나머지는 통속의 편안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행복 이야기(정지아 ‘행복’)다. 그런데도 그냥 던져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글들이 드물게 야물다는 점, 아프게 썼고 그런만큼 느낌이 깊다.

문학을 하겠다고 작심한 스무살 때 이미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 쓰겠다’고 다짐했다는 이나미다. 그런데 마흔도 훌쩍 넘겨 두 번째 소설집 ‘빙화’를 내고선 그녀는 “죽음의 여러 유형 가운데 이제 자살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 속 주인공들은 치열하지만 세상살이는 어딘지 미덥지 않은 존재들이다.

혹독한 현실에 불면하고 대인기피하고, 자기 폄하에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한 이들은 대개 사고로 죽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작가는 그들을, 그들의 죽음을 그저 묵연히 바라본다.

다 된 나이에 가족들을 외면하고(아니 외면당하고) 러시아로 유학 온 이의 죽음 앞에서 ‘살아서는 결코 풀 수 없는 철저하게 봉인된 은밀하고도 성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찾고(‘봉인’),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그늘에 발을 들이민 순간 비로소 삶의 정체’를 알아차렸을까 (‘빙화)’

정미경은 폭력의 문제, 결국은 고통의 문제에 집요하다. 그것은 연인이나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타인이기도 하고 사회와 국가, 자본, 심지어 운명의 그것이 되기도 한다. 그 폭력을 끈으로, 긴 시일을 두고 쓴 글들을 꿴다.

표제작 ‘나의…연인’에서 주인공은 소설가인 남편이 숨진 뒤 컴퓨터 파일에서 발견한 불륜의 물증들을 발견하고, 그 글들을 유고집으로 내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는다. ‘침묵조차 점자처럼 더듬어 읽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투명하다’고 믿었던 남편의 배신과 자본의 냉혹한 폭력.

주인공은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로 내 젖가슴에 겨눈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를 안고싶다’며 죽은 남편을 영원히 자신만의 것으로 남기기 위해 유고집 출간을 포기한다.

폭력에 마주서는 방식은 소극적이고, 얻고자 하는 것도 자위적이지 않냐는 물음에 작가는 “어려워도 삶이 유지되는 것처럼, 불완전함이 오히려 우리 삶을 유지하는 힘일 수 있다”고 했고, 평론가 김미현(이화여대)씨는 “모든 삶이 가짜일 때는 가짜를 견디는 생이 진짜”라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대개의 삶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품위일지 모른다.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의 ‘행복’ 속 주인공들은 잘 먹어 늘어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숨어 다니다가 자수한 ‘나’는 공권력이 강요하는 반성문에 서명한 자괴감에, 낯조차 들지 못하고( ‘미스터 존’), 빨치산이었던 척박한 부모의 삶의 그늘에 행복할 겨를이 없다(‘행복’).

자폐의 공간으로 선택한 이국의 낯선 공간에서도 시선은 늘 부담스럽고, ‘어떤 대상이 내 감각에 수용되고 그것이 뇌세포에 각인되고 저장되는 일’마저도 두렵다(‘미스터 존’).

그런데 왜 ‘행복’이냐고 묻자 작가는 지난 시절의 이념과 철학을 염두에 둔 듯 “역사와 개인의 합일과 광장과 밀실의 결합으로서의 행복”이라며 수줍은 듯 결연하게 말했다.

그의 글은 보편의 소설들보다 자전(自傳)의 그것에 가깝고, 80년대 초ㆍ중반 대학을 다닌 이들의 보편적 감성과도 깊고 기품 있게 교류한다. 어쩌겠는가. 따지자면 ‘우울 모드’야말로 지금 우리 문학의 주조인 것을. 이들의 문장과 어휘를 만나는 재미만으로도 읽어서 절대 손해 볼 책들은 아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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